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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경 Mar 15. 2024

귀신의 시간에 난 거실에 앉아 있었지 (11)

요가 가능?

엷은 막에 싸인 것을 생각한다. 특정될 것이지만 아직은 특정되지 않은 서사들을 떠올렸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한편으로는 통증이 있는 부위를 의식하며 요가복을 입는다. 고집스럽게 탄탄히 잘 늘어나지 않으면서도 또한 조건에 따라 잘 늘어나도록 만든 기능성 원단이다. 만성 통증 환자로서 착용이 버겁긴 하지만 막상 입은 후 매트 위에 앉으면 몸과 하나가 된다. 빈틈없이 내 몸에 감싸인 부드럽고 유연한 그것. 나의 움직임에 따라 그것은 섬세하게 늘어났다 줄어든다. 이런 느낌 마음에 들어 좋다.     


2017년 생애 첫 요가복을 구매했을 때가 기억난다.

사무실에서 집까지 걸어서 20분 거리이고 나름의 패턴이 생겼다. 도로의 신호 체계와 주변 상가 건물에 신규 입점한 상점의 현황을 통달함으로 가능해진 패턴이다. 내가 사는 이곳은 전남도청이 광주에서 이전하면서 조성된 신도시다. 신도시의 상가 건물은 눈에 띄게 자주 폐업하는 자리가 있는가 하면 상가 최초 입주 후 아직도 성업 중인 곳이 있는 등 자리마다 한 살이의 길이가 다르다.

습관이 된 길로 퇴근을 하던 흔한 어느 날 저녁이었다. 베**라** 앞의 네 번째 횡단보도를 지나면 다음 횡단보도 신호까지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서는 10시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매일의 10시 방향 저녁 하늘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저녁 하늘, 그의 민낯을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어쩌면 저 하늘은 매 순간의 모습을 가다듬으며 풀 메이크업을 하고 섰는지도 모른다.

그날의 그는 얼룩덜룩한 구름을 잔뜩 얹은 채 날카롭게 잘린 손톱달을 목에 걸고 있었다.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인 저녁 하늘이라 생각하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주상복합 2층 중앙, '요·가·공·간'이란 글씨가 낯설다. '요·가·공·간'이 없었는데 생겼구나. 문득 요가, 그래 요가를 해봐야겠다는 충동이 인다.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등록을 하고 '요·가·공·간'에서 판매하는 요가복을 구매했다. 운명에 이끌렸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란 말이 있는데 실제로 기다렸다는 듯 모든 일이 일어났다.   

  

나의 의지로 무언가 등록한다는 것은 희귀한 사건이다. 집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 말고 다른 취미나 관심사가 없다. 통증에 심하게 시달리면서 육체의 단단함을 내심 바랐나 보다. 나도 모르게 결심한 것 같고 우연을 가장해 요가 공간으로 유인한 완벽한 작전 성공!

15명 남짓의 인원이 세 줄로 길게 늘어서 자리를 잡고 수련하는 곳으로 아무 셈 없이 등록하긴 했지만 이미 우주가 나를 도왔다(고 확신한다).     


당시의 나는 저체중으로 근육 없이 매우 마른 상태였다. 힘을 넣고 뺀다거나 동작에 따른 호흡이 부자연스러웠다. 한껏 의욕이 앞서 무리하기도 했지만 무리할 수 있었다는 ‘아직은 건강한’ 그때가 새삼 그립다.

     

선생님이 설명하는 아사나와 그 선의 아름다움과 흐름의 부드러움을 기억하려 애썼다. 완벽히 구현되지 않는 모든 아사나, 하루하루 다른 부분에서 감탄하고 시시때때로 한계를 느끼며 이루어갔다.

요가를 하면서 나의 신체적 한계와 특징을 알아가고, 특히 약하고 통증이 자주 일어나는 손목을 사용하는 아사나에서 딱 멈추어 선 채 조금의 진전도 없을 것 같았으나 한 해, 또 한 해 시간의 힘을 빌자 차투랑가 2회 정도는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할 수 있다는 그 충만한 만족감과 함께 손목에 만성 통증이 시작된 것이 유감일 뿐이다.

몸에 익은 요가와 함께 자리 잡은 왼쪽 손목의 통증은 지금도 나와 함께다. 여러 방법과 진료, 해결할 방법을 나름 찾아보았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통증은 흐려졌다가 다시 진해지길 여러 차례 반복하며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간다.     


요즘 약을 복용하며 차도가 있어 류머티즘에서 해방되려는 순간 신경통 즉 근막통증증후군이 뒤를 이었다. 어깨와 목 부위부터 시작되었는데 짧아진 근육 탓에 목을 좌우로 돌리거나 턱을 치켜들기 힘들어진 것이다. 요가나 달리기 등 동작의 범위와 강도를 조금만 높여도 여지없이 통증이 덮쳐와 2주일 정도는 통증에 매몰되어 운동은커녕 일상을 유지하는 평범한 동작조차 힘겨워진다. 이럴 때는 현재 반드시 하지 않아도 좋은 선물 같은 행위를 멈춰야 한다. 행동반경을 좁히고 일의 총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마음을 돌보는 한편 통증 치료에 다시 집중해야 할 순간이다.

정형외과, 가까운 동네 의원의 물리치료실, 도수 치료실을 전전하다 최근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간 곳이 마취통증의학과. 이곳에서 어깨와 목의 통증은 차도가 보였고 통증의 늪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다. 이어 손목의 통증도 나아지길 바라며 치료를 이어간다.     


길어지는 통증 치료로 몇 번의 긴 쉼 끝에 되돌아가곤 했던 ‘요가공간’. 이제는 손목 통증을 넘어서지 못하고 손목 부위 자극을 제외한 아사나를 찾아 집에서 수련한다. 매번의 검색어는 ‘손을 짚지 않는 요가’, ‘손목 통증이 있을 때 요가’, ‘가벼운 요가’.

30~50분간 유튜브를 재생하며 집에서 홀로 수련한다. 상황에 맞추어 진지하고도 즐겁게 하는 수련이다. 우짜이 호흡-입술을 다물고 혀의 힘을 뺀 상태에서 목구멍 뒤쪽을 약간 수축시킨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데 들이마실 때 마음속으로 사~를, 내쉴 때는 하~, 혹은 흠~ 소리를 내며 목구멍 뒤쪽을 누르듯 뱉는다-을 멈추지 않으며 굳었던 얼굴의 근육을 양쪽으로 펼쳐 위로 올려 웃는다. 그렇다 나는 조금씩 변화되고 있고 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노화와 그 끝의 죽음까지도 들이마시고 내쉰다.     


항시 매복 중인 병사처럼 나의 호흡 뒤에 숨어 신체의 리듬을 살펴온 이유는 오직 요가!

신비로운 날, 어쩌다 통증이 여린 날, 이런 날에 나는 요가를 한다. 요가복을 입고 매트를 깔고, 그리고 류머티즘이지만 요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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