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배움의 사이

- 두 개의 리듬 사이에 서있는 나의 자리

by 서히

예술가이자 교사로 산다는 건,
두 개의 서로 다른 리듬 위를 동시에 걷는 일이다.

하나는 표현의 리듬,
다른 하나는 전달의 리듬이다.


예술가로서의 나는 자유롭게 흔들리며
감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하지만 교사로서의 나는
타인의 감정에 귀 기울이고,
그 리듬에 맞추어 나를 조율한다.


하나는 내면을 향하고,
다른 하나는 타인을 향한다.
그래서 이 두 리듬 사이에 선다는 건
늘 미묘한 긴장과 균형의 예술이다.

그 사이에서 나는 매일 묻는다.

“나는 지금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배우고 있는가?”



예술가로서의 나, 교사로서의 나

창작을 할 때 나는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감각이고,
모든 결정은 직관의 흐름에 맡겨진다.


하지만 교실에서는 정반대다.
나는 타인의 리듬에 귀 기울이고,
아이들의 감정을 먼저 읽어야 한다.

즉흥과 직관에 흐름을 맡기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에 의존한다.


예술가로서의 ‘몰입’과
교사로서의 ‘배려’는 다른 결의 감수성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를 보완한다.
한쪽이 나를 깊게 하고,
다른 한쪽이 나를 넓게 한다.


가르침과 배움 사이

예술가로서의 나는 종종 결과보다 과정을 믿는다.
그 믿음은 교실에서도 같다.

아이들이 노래를 배우며 틀린 음을 내도,
그 음 속에서 스스로의 감각을 찾아가는 순간,
나는 이미 예술을 본다.


가르침은 ‘정답’을 알려주는 일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기만의 리듬을 발견하도록
곁에 서주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배우고 있는가?”

그 물음은 언제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책임과 감수성의 균형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움이지만,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책임이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은
바로 그 자유와 책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아이들의 감수성을 건드린다는 건
그들의 세계를 잠시 빌려 쓰는 일이다.
그만큼의 책임이,
그만큼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나는 가끔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오늘 내 말 한마디가,
아이의 세계를 조금 더 환하게 만들었을까?”

그 물음이 나를 다시 교실로 이끈다.



두 리듬의 공명

결국 나는 예술가이면서 교사로 산다.
창작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일이고,
교육은 세상이 나를 다시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 둘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거울이 된다.

가르치며 배우고,
배우며 가르친다.

그 사이에서 나는 매일
예술의 새로운 얼굴을 본다.




작가메모.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교사로서의 책임이 만나는 자리,
그곳이 진짜 교육의 현장이다.
예술가의 감수성과 교사의 따뜻함이 만나는 순간,
그 자리는 더 이상 가르침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예술의 자리가 된다.





이전 04화쓸모를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