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세계를 다시 말하기 위한 철학적 시도
돌봄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가치는 오래도록 존재해 왔지만
그 가치를 설명하는 언어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예술이 그 침묵을 뒤집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까지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왜 우리는 이 노동을 다시 보아야 하는가?
단지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일까,
혹은 잊힌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일까.
그보다 더 깊은 층위에서,
돌봄이 ‘존재를 지탱하는 가장 오래된 리듬’이라는 사실을
다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돌봄을 노동이라고 부르는 일은
역사적 왜곡을 바로잡는 명명 작업을 넘어,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감각과 기술을 복원하는
철학적 시도에 가깝다.
노동의 가장 오래된 의미는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한 반복적 행위다.
그 기준으로 보면, 돌봄보다 더 근본적인 노동은 없다.
아이의 몸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감정을 안정시키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일.
이 모든 행위는 생명 유지의 기술이며
생활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다.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술이 노동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노동일까.
돌봄을 노동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이 기술의 깊이를 인정하는 첫 번째 명명이다.
돌봄은 혼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타인에게 건너가
또 다른 하루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돌봄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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