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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Nov 14. 2022

술 취한 날

소주 맛에 취해서

 한 달에 한 번 스크린골프를 즐기는 날이다. 늦은 나이에 골프에 재미를 붙인 선배님을 중심으로 모였다. 기본 회원은 4명이지만 주변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화요일 스크린골프를 즐겼다. 거기까지 좋았다. 문제는 회식하면서 곁들인 소주다. 소주의 알딸딸한 기분이 내 몸을 장악했다. 탈환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술을 좋아하는 김선배와 마주 앉았다.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잔을 채운다. "뭔 일 이래 술을 다 마시게" 선배는 나에게 술을 따르면서 웃는다. " 저도 마시죠. 형님 혼자 드시게 됐으니 맞추는 거요." 다른 전선배는 다음날 라운딩이 잡혔다고 마시지 않는다. 술이란 게 혼자 마시면 뻘쭘해진다.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과 못 마시는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는 그렇다. 이번 모임은 총 일곱 명이 모였다. 그중에 나와 김선배만 술을 마시게 됐다. 그 자리에서 나도 빼버리면 김선배만 남는다. 옆에서 술 치는 사람이 있어야 술맛도 나는 법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자작 술은 안 어울린다. 술이 있는 자리에선 빈 잔에 소주를 또르르 따라야 맛이 산다.


빨강 뚜껑 소주에 길들여진 사람에겐 후레쉬는 달기만 하다. 취기가 오를 때 보면 빈병이 서너 병이다. 빨강 뚜껑이라면 각 일병에 한 병 추가로 끝나지만 후레쉬는 1+1이 되고 만다. 아무래도 제조회사의 고도의 전략인 것만 같다. '한 병 더요.'를 두 번 하고 나서야 점심 회식을 끝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나와 김선배만 남았다. 집 방향이 같아 버스정류장까지 걸으면서 "한 잔 더하실래요?"물었다. 그게 실책이었다. 저녁은 아직인 오후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모처럼 함께 한 자린데 좀 더 마셔도 될 것 같은데. 아직 서쪽에 해가 있고 넘어가려면 멀었거든. 자리 옮기면 술 좀 깨지 않겠어. 등등 무의식 속으로 소주의 알코올은 침투에 성공했다.


먹골역에서 하차했는데 김선배는 또 다른 선배를 호출한다. 김선배와 다른 모임을 같이 하는데 그 모임에 고문 격으로 함께하는 분이다. 아 술고래 속에 낀 감성돔 신세가 되려나 보다. "아이고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어 오랜만이네" 서로 악수를 나눴다. 가려고 했던 식당이 다섯 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다. "뭐더러 기다려 저리 가." 뒤늦게 합류한 선배는 스시 식당으로 앞장선다. 웬걸 스시집도 다섯 시에 오픈이란다. "기냥 앉어 20분도 안남었응께" "그러시죠, 뭐. 앉아서 기다려도 되나요?" "네"


안주는 모둠초밥을 주문했다. 초밥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셔본 적은 있다. 회전 초밥집에서다. 초밥 한 점에 소주 일 잔을 기울인다. 안주는 밥 안 주가 좋다. 밥이 소화되면서 소주의 알코올을 희석시킨다. 취기가 천천히 오고 속 쓰림도 덜하다. "야, 이게 안주로 좋아 소주 서너 병은 거뜬하거든." 고문 선배가 소주를 들이켜고 젓가락으로 초밥을 들어 올린다. 맞는 말씀이시죠. 난 속으로 맞장구를 쳤다.


셋이 초밥을 가운데 두고 빈 소주병을 테이블 가장자리로 내몬다. 낮은 도수의 후레쉬는 빠르게 비워졌다. 잔을 비우고 병도 비운다. 비워진 병 속에 든 소주는 셋의 위장으로 공평히 스며든다. 위장으로 간장으로 혈액을 타고 돈다. 심장이 고동치고 머릿속에서 혀의 감각을 제일 먼저 마비시킨다. 혀 꼬인 소리들이 테이블을 넘나 든다. 혀가 꼬이고 술병을 잔에 따르다가 넘친다. 멈출 때가 온 것이다.


"0수야 너 먼저 가라. 야는 내가 데려다줄 것인께." 고문님의 술자리 탈출을 허락받아 일어섰다. 많이도 마셨구나. 술아 집에만 가게 해다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까무룩 잠이 들었나 창밖을 보니 내릴 정류장이 아니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서둘러 하차하고 건너편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졸지 말자.


간신히 목적지에서 하차하는 데 성공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이러다 아내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겠는데'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웬수 뭔 술을 이렇게나 마셔!!"


아침에 눈을 뜨니 등짝이 얼얼하다. 술을 끊어버려야 하는데. 술에 죽는 게 아니고 아내의 등짝 스매싱에 먼저 죽을지도. 선배님들은 안녕히 들어가셨나 모르겠다. 잘 들어가셨겠지. 나보다 술이 쎄신분들이니까.


소주 맛에 취한 하루다. 그래도 안주를 초밥으로 먹어서 그런가 속은 안 쓰리네. 청소년들에게 유해약물인 술, 조선시대 영조께서 금주령을 내리셨는데 그 기간에 태어난 사람들은 술에 약한 인자를 타고났을 텐데, 난 그 후손은 아닌가 보다.


술은 잘 마시면 약이요 잘 못 마시면 독이 된다고 한다. 적게 마시면 약이요 많이 마시면 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술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다룰 수 없는 데도 다루고 싶은 유혹을 멈출 수 없다. 언젠가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하리라. 그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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