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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초이 Mar 01. 2023

시절인연

만남과 헤어짐

 티브 조선의 미스터 트롯 2를 시청하다가 안성훈이 부른 시절 인연을 듣게 되었다. 노랫말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시절 인연은 만날 때가 되어 만나는 것이고 만난 때가 다 되어 또 다른 만날 때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난 시절 인연에 갇혀 살고 있구나. 직장은 3년 주기로 부서 이동을 하고 있다. 규정에 따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동안 인연을 맺는다. 직장 생활하는 동안 수집한 인적 연락처는 천을 넘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보았다. 언제 이렇게 많은 연락처를 수집했을까 자문한다. 그룹명을 찾아들어가 이름들을 눌러본다. 011,016, 번호가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010으로 변경되지 않은 전화번호를 가진 이름들을 삭제한다. 삭제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얼굴로 변화한다. 빙산아래 잠자던 의식이 떠오르듯 그들과 있었던 작은 순간들이 반짝였다. 마치 스위치를 올리면 두세 번 깜박이다 켜지는 형광등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기억의 영상이 떠오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어떻게 내 전화 연락처에서 잠자고 있었을까. 뭔가 힌트를  찾고자 핸드폰의 서랍들을 열어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진작에 지웠어야 할 이름이구나. 망각 속으로 사라져야 할 이름인 것을 내가 잡고 있었구나.


  목적지를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마지막 휴게소를 내비가 알려준다. 직장 인생의 목적지 전 마지막 휴게소에 도착했다. 종착 직전의 시절 인연들과 작은 순간들을 같이 겪을 것이다. 지금의 인연들은 지난 인연보다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덮어쓰기다. 지난 기억은 빙산 아래로, 아래로 침잠한다.

  

  지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어느 순간이 있다. 어느 순간의 '어느'는 막연하다. 정할 수도 없고 정해지지도 않는다. 시간의 어느, 장소의 어느 둘 다 막연하다. 그 막연했던 순간이 눈앞에 나타날 때, 우리는 만날 때가 되니 만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곳에서 만나질 인연들의 끌어당김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날 때가 되었기에 힘의 작용은 옮겨진다. 약해진 인연의 끈을 놓아야 함에도 붙들려고 애쓰는 사람은 미련하다. 미련 없이 돌아서야, 돌아설 수 있어야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것이다.


  시절 인연의 노래를 듣다 정처 없이 이리저리 달렸다. 인연은 인체의 자율신경이다. 생명유지를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자율신경처럼 인연도 모르는 순간  다가와 곁에 머문다.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인연을 챙길 수는 없다. 오는 인연 가는 인연 모두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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