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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중심에서 삶을 외치다

해당 내용은 다음의 카드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질병의 중심에서 삶을 외치다 (1)]


건강한 노년은 누구나 바라 마지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 해, 한 해 지남에 따라 질병을 하나씩 가지고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노인실태 조사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중 86.1%가 하나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고 평균적으로 2.2개의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만성질환은 당장 죽음의 위기보다 1년 이상 지속되는, 완치보다 관리를 요하는 질병으로 살아가는 데 여러 가지 불편과 제약을 줍니다. 고혈압, 당뇨병과 함께 각종 심장병, 만성 폐쇄성 폐질환, 뇌졸중, 만성 신장병, 치매 등이 대표적인 만성질환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상당수의 암도 꾸준하게 치료받아야 하는 만성질환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 중 심각한 만성질환은 진단 자체만으로도 큰 충격입니다. 삶을 태어나서 나이 들고 병을 얻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生老病死)으로 본다면, 질병이라는 것은 곧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각한 만성질환은 따라서 죽음과 함께하고 죽음을 마주하며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병을 앓는 사람에게 심리적, 사회적인 스트레스, 그리고 강렬한 정서적 고통을 줍니다. 실제로 영국인 약 4700만 명을 조사했을 때 심각한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3배 더 많이 자살했습니다. [2] 국내의 약 6만 명의 자살자를 분석했을 때도 자살자의 90%가 만성 질환을 경험했고, 그들은 만성질환이 없는 사람보다 자살의 위험비가 약 2-3배 높았습니다. [3]     


왜 그럴까요? 긴 병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지속되는 통증, 불편함과 같은 고통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지치게 되면 고통은 점점 더 심해집니다. 지속되는 고통과 함께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괴롭습니다. 고통은 피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어떤 사람은 괴로움에 지쳐 고통을 멀리하기에만 초점을 맞추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통에서 멀어지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괴로움만 없다고 살만한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꾸려온 삶 속에는 정말로 살아갈 만하다고 느낀 소중한 그 무엇과 활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통을 피하기”만 생각하다 보면 하루 종일 “고통”만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면 괴로운 기억을 피하고,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는 것만 고심하게 되지요. 그리고 삶의 생동감과 즐거움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질병에 대한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의 고통보다 고통이 올 것에 대한 괴로움이, 겪은 고통에 대한 괴로움이 자신을 짓누릅니다. 그리하여 지금의 삶에서 유리되어, 지금이 아닌 미래와 과거의 고통이 지금의 순간을 가득 채워 버리기도 합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죽지 못해서 삽니다.

삶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직 고통만이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진실로 내 모든 삶의 궤적이 끝에 이르러 남은 것이 질병의 무게라면, 억지로 삶을 연장하기만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피하며 삶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우울함과, 불안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전자와는 다른 경우입니다. 우울과 불안은 생각을 더욱 부정적으로 몰아가지요. 만성질환의 경우 항상 삶 속에선 질병이 있기에, 질병의 고통과 싸워 이기는 것은 때론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노력이 “스스로 느끼기에” 반복해서 실패하여 느끼는 무능력함, 막막함, 무력함, 고립감과 비관적 생각은 일종의 사기 저하입니다. 전투 상황에서 사기 저하가 승패에 영향을 미치듯, 만성 질환에서도 사기 저하는 자살의 위험 요인입니다. 지치고 사기가 떨어지면 “삶의 의미”를 더욱 찾기 어려운데, 이것은 우울증보다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잘 예측합니다. [4]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미안하고 때로는 원망스럽습니다.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가도, 자신의 고통을 몰라주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짐을 혼자 감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르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고통과 연결되어 과거와 미래의 반복되는 괴로움을 혼자 감당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현재에 연결되어, 질환보다 더 큰 나와 연결되고, 삶의 의미와 연결되며,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먼저 지금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고 있습니까? 어느 순간 과거에 겪은 일 속에 파묻혀 있지는 않나요? 다가올 미래의 혼란함 속에 휘말려 있지는 않았나요? 여러 가지 상념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를 생각의 격류 속에서 헤맬 때 알아차려 보십시오. 나는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하늘이 보인다면 하늘의 색은 어떤가요? 구름이 떠가고 있다면 구름의 모양은 어떻습니까? 산이 보인다면 산의 나뭇잎은 무슨 색으로 빛나고 있나요? 방 안이라면 친숙한 물건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 물건의 형태와 재질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손때 묻은 물건의 모습을 충분히 바라보세요. 자리에 앉아 있다면 양 발이 바닥을 단단히 디디고 있는 감각을 느껴보세요. 양 발을 천천히 교대로 디뎌보며 바닥과 맞닿는 그 감각을 느껴 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잠시 자신 안의 상념을 모두 털어내듯 할 수 있는 한 깊고 길게 입으로 숨을 내쉬어 봅시다. 그리고 방 안의 탁한 공기를 환기하듯 신선한 공기를 내 몸 안으로, 다시 가능한 깊고 길게 코로 들이마셔 봅시다. 그리고 답답함을 모두 털어내듯 깊고 길게 숨을 내쉬어 봅시다. 이렇게 약 일, 이분 가량 몇 차례 깊게 호흡을 한 뒤 긴장되었던 몸을 쭉 뻗어 보십시오. 기지개를 길게 켜 보셔도 좋고,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해도 좋습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을 느껴보십시오.


심각한 만성 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몹시 용기 있는 행동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기 위해 노력한 자신에게 위안과 고마움을 전해봅시다. 양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하여 양손을 반대편 가슴 위로, 마치 나비처럼 두어 봅시다. 그리고 천천히 호흡하며 한 손, 한 손을 번갈아 양측 가슴을 천천히 토닥여 줍시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천천히 양손으로 토닥여 봅시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두드림을 느끼며 삼분 이상 천천히 토닥여 줍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감사를 전해 봅시다. “오늘 하루도 무척이나 고생했다.” “오늘 하루도 힘들었는데 잘 견뎌냈다.” “오늘 하루도 힘내줘서 고맙다.”


병이 있기 전 자신의 삶을 생각해 봅시다. 다음의 문장 하나하나를 입으로 소리 내어 천천히 말하며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삶 속에서 어떤 순간이 가장 선명하게, 소중하게 느껴지나요? 

언제 무엇을 할 때 가장 활기 있고 생동감이 있었습니까?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가족과 친구, 직장 등에서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리고 병이 진행되며 여러 가지 고통을 겪음에도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까?

무엇을 볼 때, 무엇을 할 때 고통이 줄고 웃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나에게 활기와 즐거움을 주었습니까?  

무엇을, 누구를 위해 견뎠습니까? 그 무엇 혹은 누군가는 소중한 대상이었습니까? 

누구와 함께할 때 위안이 되었습니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만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무엇을 하고,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습니까? 

나 자신의 삶 속에서 얻은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을 누구와 나누어보고 싶습니까?


마지막으로 소중한 사람, 고마운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고마움과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말로는 차마 전달하지 못했던 감사와 애정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능하다면 짧은 문장으로 적어 보십시오. 어떤 마음으로 문장을 쓰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문장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 생각하고 썼던 문장을 들려주십시오.


여러분은 병자가 아닙니다. 삶은 병보다 훨씬 큽니다. 나 역시도 환자보다 큰 존재입니다. 만일 질환이 주는 고통으로 괴로움 속에 매몰된다면 바로 지금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살아온, 살아갈 삶 속에서 소중했던 것을 돌이켜 보십시오. 무엇보다 용기 있는 자신을 토닥이고 소중한 관계와 연결되어 가십시오. 그리고 혼자서는 어렵다면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정신건강의학과를 포함한 심리전문가와의 시간은 만성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당신은 그저 고통에 끌려가는 환자가 아니라 소중한 이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삶 속의 고통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사람입니다.


* 위 연습은 다음의 카드뉴스를 보면서 연습할 수 있습니다.

[질병의 중심에서 삶을 외치다 2]

[질병의 중심에서 삶을 외치다 3]

[질병으로 당신의 삶과 멀어졌던 분들에게]


서민철 중앙보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만성질환이 내 마음을 짓누를 때… '이걸' 기억하세요]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2023년도 노인실태조사. 보건사회연구원

2. Nafilyan V, Morgan J, Mais D, Sleeman KE, Butt A, Ward I, Tucker J, Appleby L, Glickman M. Risk of suicide after diagnosis of severe physical health conditions: A retrospective cohort study of 47 million people. Lancet Reg Health Eur. 2022 Dec 14;25:100562. 

3. Song A, Koh EJ, Lee WY, Chang S, Lim J, Choi M, Ki M. Suicide risk of chronic diseases and comorbidities: A Korean case-control study. J Affect Disord. 2024 Mar 15;349:431-437.

4. Costanza A, Vasileios C, Ambrosetti J, Shah S, Amerio A, Aguglia A, Serafini G, Piguet V, Luthy C, Cedraschi C, Bondolfi G, Berardelli I. Demoralization in suicide: A systematic review. J Psychosom Res. 2022 Jun;157:110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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