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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헌 Jul 19. 2023

인간 속의 경이와 경외

창세 이야기 # 3


  내가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둘 다 새로운 경험과 지식을 주고 

보다 진전된 생각들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방송도 여행이나 

다큐멘터리 방송을 즐겨 보게 된다. 


일전에 EBS “세계테마여행”에서 

북유럽에 있는 핀란드와 노르웨이 편을 보았다. 


영상 중에 인상 깊은 장면은 

여행에 등장하는 작가가 

오로라를 직접 목도하는 장면이다.



인간 속의 경이와 경외


오로라 체험은 

북극지역에서 인공의 어떤 빛도 없는 

밤하늘에 홀연히 펼쳐지는 

빛의 향연을 경험하는 것이다. 


작가가 오로라가 펼쳐지는 신비한 광경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한 순간 

갑자기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다. 


작가는 오로라의 신비로움을 보는 순간 

왜 눈물이 솟구쳐 올라왔을까? 

아마 자신의 마음을 쉽게 설명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솟아나는 눈물에 거의 다 공감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때때로 광대한 우주와 

대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직면할 때에 

오감을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의 경험으로 

자신조차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느낌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우주, 

생명체 속의 신비한 소우주

이 들 못지않게 신기한 존재는 

우리 인간 자신들이다.


우주을 생각하며

나아가 나는 누구인가? 생각하고

양심을 가지고, 고뇌하고 번민하는 인간    

때론 인간이 가장 경이로운 존재로 느껴진다. 


“거경궁리(居敬窮理)”는

이러한 경이로움과 경외감으로

삶의 이치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대한 

동양사회에 내재된 생각이다. 


서구사회도 

동일한 생각들이 공유되어 있다. 


서구사상의 

주요 기반을 제공한 칸트의 묘비명에

이러한 글들이 적혀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탄과 경외로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머리 위에 별이 총총히 빛나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안의 도덕법칙이다."


칸트의 책들이 인간과 사회에 

매우 깊은 통찰들을 주고 있는 배경이 무엇일까?

나는 그의 사유와 사고의 밑바탕에 있는

우주와 인간, 존재들... 그 근원에 대한 

깊은 경이감과 경외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생명은 최초에 어디서 어떻게? 

  

 카오스 사이언스 강의에서 한 유명 학자가 

"생명의 기원"의 주제로 하는 강의에서

 과학자로서 한 발언이 

나에게는 의미 있게 들려왔다. 


그 교수는 신을 믿지 않는 분이고, 

다윈의 진화론을 철저히 믿는 유명과학자이다. 


그는 강의 중에 

“나는 과학자이지만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는 

솔직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자연발생설만을 믿는 것이 어렵습니다. 


생명체의 신비를 볼 때에 차라리 

우주에 어떤 생명공학연구소 같은 곳에서 

SD프리트 같이 찍어내어 준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는 

창조론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분의 학문체계 속에는 

창조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생명의 기원 앞에서는 

방심해서 진화론 과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실수(?)로 

잠시 진심을 보인 것일까? 



위대한 과학자 뉴톤이 

자기 책상 위에 태양계의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하루는 친구가 자기 방에 놀러 와서 물었다. 

“어이! 그거 잘 만들었는데... 누가 만들었나?” 


“아니 아무도 안 만들었어 저절로 만들어졌어!” 

라고 뉴톤의 대답했다. 


친구는 “에이! 이 사람 말도 아닌 소리 말게, 

어떻게 이런 것이 저절로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친구는 창조를 안 믿는 사람이었다.


"신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개관적으로 명증한 확증은 없다. 


그럼에도 창조를 배격할 수 없는 것은 

카오스 사이언스 강의자로 나온 

진화론을 믿는 유명교수처럼 

인간의 지식과 과학을 넘어서는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는

창조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자세이다.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인간에게 경이와 경탄의 대상이다.    



지난한 여정 끝에 다다른 나의 생각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쯤, 

추석인가? 정월 대 보름인가? 

동네 사람들이 밤에 집 밖 공터로 나와 

모두 달을 바라보고 소원과 복을 비는 날이었다. 


나도 어른들을 따라 나가 

그 사이에 서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커다란 달을 보고 

손을 모아 비비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누군가 나에게도 

달에게 절하고 소원과 복을 빌라고 했다. 

이상하게 나는 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왜 저 돌덩이에게 복을 빌어야 하지? 

사람이 물질보다 못한 존재인가?'

 ‘이것은 좀 아닌 것 같다!’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우주와 사람, 이것들은 다 어디서 왔지? 

질문에 질문의 꼬리가 이어지면서 

나는 일찍부터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길고 지난한 지적 혼란, 

정신적 방황의 여정 끝에 

어느 시점부터 

'이 우주와 인간은 창조가 되었다.

'는 쪽으로 나의 생각의 무게추가 기울게 되었다.


그렇다고 교회를 나간 것도 아니다. 

기독교인이 된 것은 더욱 아니었다.

단지 홀로 여러 서적들과 

성경을 보며 생각들을 하면서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성경이 비교적 합당한 제시로 보였고,  


삶의 탐구, 

진리에 대한 집요한 갈망 끝에 

'우주와 인생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한 절대자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교회를 출석하거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그 후로도 수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경탄이

신에 대한 경외로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도 인간에 대한 경탄 없는 

신에 대한 경외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로마서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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