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노트에 글씨를 써 내려가는 소리보다 타닥타닥 문서 창을 띄워놓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더 익숙해진 지 오래예요. 대학 때는 노트를 많이 썼는데, 졸업하고 <갤럭시 노트2>라는 어마무시한 노트가 제 손에 들어온 후, 가방 속에 노트를 넣는 일이 줄었어요. 플래너, 다이어리, 노트. 예전엔 많이도 샀는데.... 살때마다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을 고르곤 했죠. 이제는 일정 관리, 메모, 문서 작성, 전부 가벼운 스마트폰 하나로 할 수 있으니까 노트와 정말 많이 멀어졌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순간의 생각, 감정, 삶을 기록한 노트를 간직하는 일과 멀어졌죠.
멘들스
그러다 올여름, 우연히 수제 노트를 알았답니다. 인터넷에서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관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어여쁜 멘들스 케이크 상자를 재탄생시킨 수제노트를 발견했어요!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핑크빛 멘들스를 보고 반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예요.
노트를 보자마자 마음이 콩닥콩닥. 곧장 주문완료, 입금완료, 발송완료! (수제라서 바로 발송완료가 되진 않지만 어쨌든) 재료가 전부 소진될 때까지만 팔아서 혹여라도 동날까 봐 마음 졸이며 주문했답니다. 이렇게 멋진 수제 노트가 세상에 몇 권 없다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요? 역시나, 이제는 살 수 없어요.
캡틴 아메리카
수제 노트를 알고, 만드는 분의 홈페이지와 트위터를 자주 드나들었어요. 어느 날,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를 모티브로한 노트가 올라왔는데, 붉은 스트라이프와 고급스러운 남색 펄지의 색감에 반해서 또 주문했죠.
이번엔 노출 바인딩으로 엮은 노트가 아니라 익숙한 양장 노트였어요. 멘들스 노트보다 튼튼해요. 그래서인지 훨씬 두툼하고 크기도 더 커요. 이전 노트도 그랬지만 처음엔 아까워서 한 글자도 못 쓰고 모셔 뒀답니다. 그러다 이것저것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노트에 끄적이는 낙서마저도 소중해지는 거 있죠. 아! 캡틴 아메리카 노트도 이제는 살 수 없어요.
제본 키트
수제 노트에 발을 들여놓으니, 직접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샘솟더라고요. 매달 손편지 프로젝트로 수제 엽서를 만들고 있는 터라 더 관심이 갔어요. 마침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바인딩 키트가 올라왔지 뭐예요. 당장에 주문했죠. 바인딩 키트도 이제는 살 수 없어요.
[송곳, 바늘, 폴더]도구는 옵션. [실, 끈, 속지, 표지]로 구성된 키트. 멋지게 노트를 완성 시키고 싶었으나... 서투른 솜씨 덕에 실이 드나드는 구멍 주변으로 종이가 전부 찢어지는 사태가 벌어졌어요. 흐으ㅡ으으으흑륵흑 한 권은 선물 주려고 했는데 결국 두 권 다 제가 썼어요. 열심히.
몇 권의 노트를 구입하고, 노트나 책을 엮는 바인딩 기법 강의와 직접 노트를 만드는 강의를 찾아 봤어요. 가을부터 쭉 공방에서 직접 노트 만드는 수업을 듣고 있답니다. 생각보다 세심한 작업을 거쳐야 하더라고요. 또 무척 흥미진진해서 열심히 듣고 있어요. 만들 때마다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 덕분에 방 아무데서나 뒹굴던 노트를 이제는 소중히 다룬답니다.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 셈이지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도 올겨울엔 일상에 변화를 줄 멋진 일과 만나셨음 좋겠네요:)
+ 제가 구매한 수제 노트 제작자의 트위터와 블로그 링크입니다. 지금은 다른 디자인의 노트를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