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일상의 수작(手作)>전
작업실을 꿈꿔보신 적 있나요? 꽉 채워진 책으로 종이 향이 가득한 서재, 기름때 묻은 공구가 널브러진 차고, 고운 색실과 천으로 둘러싸인 작업대. 어떤 로망을 가져보셨는지요.
카페인가 할 정도로 커피 향이 진하게 베여 있는 컨테이너 작업실. 저는 그곳에서 수제 노트 만드는 낭만을 품고 있습니다. 오손도손 여럿이 노트도 만들고, 속 시끄러운 친구가 편히 쉬었다 가기도 하고, 때로는 밖이 훤히 보이는 창가에서 혼자 사색에 젖기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작업실. 오직 나만의 감성으로 채울 수 있기에 욕심나는 공간입니다. 하물며, 작품을 만드는 작가에겐 애정 어린 공간, 그 이상일 거예요.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일상의 수작(手作) Making Life> 전이 한창인데요. 여기에 전시된 특별한 작업실을 소개할게요.
패브리커. 들어보신 적 있나요? 뉴요커New Yorker가 익숙하다면 조금은 친숙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패브리커’에서 천을 의미하는 패브릭Fabric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요. 천을 이용해 폐가구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가구 디자인 듀오입니다.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에서 설치•공간미술까지 폭넓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가수 지드래곤G.dragon과 다양한 분야 작가들의 협업으로 PEACE MINUS ONE 전이 열렸습니다. 여러 가지로 굉장히 이슈였는데요. 그때 지드래곤과 함께 만든 공간을 전시하기도 했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특별한 공간인 패브리커만의 작업실을 선보였습니다.
Fabrikr
작업실이라고 하면 흔히 ‘건물 속 어떤 방’을 떠올리기 마련이죠. 그런 방 안에서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한적한 카페, 몸을 뉘인 침대, 화장실, 꿈속까지, 손으로 무언가 만들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작품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을 수 있지요. 작가가 두 발로 서 있는 어느 곳이든 작업실이 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머릿속이나 마음속은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죠.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에 없는 곳입니다. 패브리커에게 의미하는 작업실은 바로 그곳, Every(No)where 입니다.
정글짐 같은 작품 속을 잘 들여다보면, 한가운데에 책상이 보입니다. 패브리커가 쓰던 것이죠. 계속 생각하고 작업했던 책상을 여기에 둔 것은 작가, 특히 패브리커는 작업실을 어느 한 곳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의미에 덧붙이면 작품이 놓여있는 미술관의 돔 하우스도 작가의 작업실이었던 셈이겠죠?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작업실. 왜 작업실을 붉은색 파이프가 끝없이 지나가는 모습으로 만들었을까요?
‘3차원’, ‘공간’을 나타낼 때 세로축과 가로축이 있는 좌표공간을 사용하는데요. 이 작품은 공간을 표현하는 세로축과 가로축을 계속해서 이어 작업실이 ‘건물 속 방’을 너머 작가가 있는 곳 어디라도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작업 공간이 무한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붉은 파이프를 둘러싼 벽에는 문이 보입니다. 그동안 패브리커가 거쳐 온 작업실의 문이에요. 문을 통해 자신들의 실제 작업실에 가기도 하고 작업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로 가기도 하고. 작업 공간을 넓히는 문인 셈이지요.
작가 노트 中
'공간(空間)'이란 본디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뜻한다. 이곳은 비어있기에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으며, 또한 그 자체로 무엇이 될 수도 있다.
패브리커의 작업실을 감상하고 나니, 저만의 작업 공간은 길과 버스라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의 꼬리를 물며 길을 걸을 때 그리고 버스에 몸을 맡긴 채로 생각에 잠길 때, 가장 아이디어가 번! 뜩! 하거든요.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제 생각으로 꽉 찬 기분이에요. 여러분의 작업 공간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