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사람이 가진 마음은 곳곳에 놓인 물건이나 분위기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공간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한 공간에서 나누는 언저리의 일들이 그러하다. 아침 출근 후 응급실 상황을 돌아보고 9시가 되기 전 주사실로 향한다. bed를 닦고 물품관리를 하며 투약준비실을 꼼꼼하게 환경정리한다. 카트 위에 빠진 물건이 없는지 점검하고 컴퓨터 로그인을 한다. 이윽고 9시는 다 되어 가고 창문 밖에서 햇살이 조용히 밀려들어올 준비를 한다. 햇살은 요새 들어 너무나 고운 빛을 낸다. 고운 빛을 따라 내는 소리는 12월 겨울의 시절을 잘 안아가라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인력이 없어 충원하고 관리하는 입장에서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이 많다. 때마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가 하는 선택이, 행동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 고민이 될 때가 있다. 관리하는 입장에서 들어오는 여러 문제들의 소용돌이를 잘 헤쳐나감과 동시에 부서원들의 입장에서 잘 헤아리어 함께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기까지 시행착오는 너무나 많다. 몇 년 전 뜻하지 않게 간호부를 이끌게 되면서 나는 그냥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업무 상황과 주어짐으로 인한 현실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 가지만 익숙하지 않음이 쌓인 경험치가 익숙한 부담이 되기까지 버거운 순간이 많았다. 그때마다의 버거움 안에 나는 어떤 마인드를 장착하고 달려왔는지 생각해 본다.
이도 이럴 것이 요새 외래 파트 주사실 인력이 비어 스스로 그곳 업무를 하게 되면서 위기가 위기만이 아닌 또 다른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나는 일단 주어지면 끝까지 해낸다. 작은 체구인 데다가 나서서 표현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내가 먼저 해 보아야 잘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왔다.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마음 하나로 누가 보지 않아도 내가 먼저 보고, 듣는 일 잎에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자부심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의 임상 경험에 비추어 스스로도 어려움은 힘께 하고 밑바닥의 소소한 일까지도 나서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뿌리 박혀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일단 해보고 받아들임으로 인해 부정의 것을 활용하는 법을 알게 된다. 그 안에서도 나에게 이로울 긍정이 존재하여 그로 인해 웬만한 일에서는 잘 흔들리지 않을 마음을 지닌 강력한 무기가 되어감을 느낀다.
그동안 이직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한 공간에서 주사실, 응급실, 병동, 수술실 업무 등 여러 부서할 것 없이 경험하다 보니 부서의 실무적인 방향은 가늠이 되고 그 고충을 알기에 나누려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숨이 턱까지 막힐 정도로 버거운 순간들도 찾아 오지만 예전보다 단단해진 나를 만나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경험 안에서도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실천하여 나가는지에 따라 나의 앞으로가 달라진다. 환자를 만나가는 것에서 나의 손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자체가 기쁘다. 나누는 대화 안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비록 환자이지만 그 사람의 인생 한 편을 만나게 되어 이 또한 신기하다. 다양한 환경 안에 놓인 다양함을 마주하면 또 다른 다양함 안에 새로운 공간이 차곡차곡 채워진다.
컴퓨터 화면에 환자 접수창이 뜨면 예방접종 관리 사이트도 미리 로그인을 해 둔다. 이어 유튜브로 접속하여 지브리 음악이나 조용한 피아노 음악을 낮게 흐르게 한다. 몸이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 대기하는 공간 안에서 무언가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나의 말과 표정이 함께 그 공간 안에서 좋은 기운을 뿜어가면 좋겠다. 커피 한 잔을 타고 간호 처치 업무를 기다리는 동안 펼쳐질 하루가 12월의 햇살처럼 반짝거린다. 차창으로 스민 햇살은 차가운 공기를 통해 살포시 내려앉는다. 문이 열리고 병동에 입원한 아이가 소아과 진료실로 내려오다가 ‘빼꼼’ 엄마와 함께 인사를 한다. 수액처치를 위해 혈관주사를 놓았던 친구다. 이 맛에 이렇게 일을 한다.
이 공간 안에 흐를 분위기가 좋은 마음으로 잘 흘러가도록 오늘도 최선이라는 방법을 택하련다. 뭐든 주어진 대로 하다 보면 때때로 나의 것으로 차곡차곡 쌓여 한층 성장하여 가는 진정한 전문인이 되어 가는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생긴다. 공간 안에 이룰 일들은 같은 업무, 같은 일상이지만 만나고 품어갈 마음 하나가 어떤 소신으로 나를 이룰지에 따라 매일은 기대되고 소중하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