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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석무 Jun 05. 2022

핀크스에서 열리는 골프 대회를 보며


지금 SK텔레콤 남자 대회 하는 핀크스에서는, 

매년 가을 (SK네트웍스 서울경제) 여자 대회도 열린다.

그중 14번 파3홀의 (공식)길이는 남자대회 217야드, 여자대회 182야드다.

긴 아이언 샷 제어 능력 차이가 드러나는 홀이다. 깃대 위치에 따라 홀이 주문하는 기술 샷 구질이 달라진다.

작년 대회 남자 선수들은 이 홀에서 평균 3.19타, 여자선수들은 평균 3.10타를 쳤다. 핀 위치는 여자 대회 때도 어려운 코너 핀이 많았다.


14번(웨스트 5번) 파3 홀


이 홀 티잉 구역에 서면 그린이 조각배처럼 작아 보이고 그 너머에 산방산이 나왔다 사라졌다 한다(페이드를 구사하는 선수들의 눈에는 산방산이 안보일 것이다. 티잉구역 왼쪽에서 잘 보인다). 

중계할 때, 이 홀에서는 땅바닥만 보여주지 말고 선수의 시각에서 보는 느낌이 나게 화면을 잡아주면 좋겠다. 이 까마득한 조각배 그린에, 남자 선수들이 롱 아이언을 피칭웨지 다루듯 가볍게 쳐서, 핀 위치에 따라 얼마나 아름다운 구질로 세우는지 보여주면, 남자 대회가 남자 대회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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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 파4 홀의 (공식)길이는 남자 대회 490야드, 여자 대회 409야드인데(매일 다소 다르게 셋업한다), 작년 여자 대회에 4라운드에서(KLPGA 투어 평균 비거리의) 임희정 선수는 드라이버로 237.6야드를 치고 171.8야드의 어프로치를 했다. 남자 선수들은 490야드 풀백티에서 티샷하고 170야드(150미터 쯤) 내외의 어프로치를 하는 선수들도 보인다. 


18번(웨스트 9번) 파4 홀. 그린에서 돌아본 모습


참 아름다운 홀이다. 한라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중산간의 풍광 흐름을 느끼며, 실개천 너머 작고 굴곡진 그린을 (선수들마다 어떤 구질로) 어떻게 공략하는지, 입체적인 중계 화면 기술로 잘 보여주면 남자 골프의 파워 넘치는 매력을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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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크스는 제주의 자연을 애틋하게 품어낸 입체 예술품이다.

돈만으로 이런 골프장을 만들기 어렵다.  


포도호텔


고 유동룡(이타미준) 선생은 이곳 ‘포도호텔’과 클럽하우스 설계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잇는’ 건축 세계관을 이뤄냈고 이후 이 일대에 수·풍·석 박물관, 방주교회 등을 지었다. 

잘 알려졌듯이 포도호텔은 프랑스 예술 훈장인 슈발리에와 레종도뇌르, 김수근 건축상, 일본의 무라노 도고상 등의 수상으로 이어진 작품이다. 클럽하우스도 애틋하게 제주의 자연을 끌어안는다. 지붕 가운데 입방체 조형은 바람을 타고 제주의 오름 사이를 날아오르려는 연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클럽하우스. 한라산을 닮아간다.


이타미준의 내면적 성찰을 담은 건축물 안 여러 곳에 걸린 이왈종 화백의 천진난만한 그림들은 경쾌한 액센트를 찍으며 자유분방하게 어울린다(이왈종의 그림은 이곳에서 더욱 유명해져서 다른 골프장에도 많이 걸렸지만, 그의 그림은 -내 눈에- 이곳에서 가장 살아있어 보인다).


제주 물항아리 모양의 티마커도 제주 출신 도예가 김미영의 작품이다. 코스에서 볼 수 있는 돌담들도 하나하나 예술품에 가깝다. 미국 골프설계가 협회 회장을 지낸 테오도르 로빈슨이 만년에 설계한 골프코스는 한국 최초의 ‘세계 100대 코스’로 뽑히기도 했다. 각 분야 세 작가의 예술적 성취는 접어두고라도, 이들을 함께 어울리게 한 상상력과 실천의 뚝심이 존경스럽다.

(이타미준 선생도, 이 골프장을 설립한 김홍주 회장도 외로운 ‘자이니치’였다.) 



잘 알려진 대로, 핀크스(PINX)는 그려낸다는 뜻의 라틴어 'Pinxit'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골프장을 지어냄을 넘어 ‘자연 속에 그려낸 예술 작품’이라는 뜻이다.


핀크스는 2010년에 SK그룹에 인수되었다. 한때 SK그룹명을 앞세우기도 했으나, 이제는 오히려 SK 대기업의 이미지를 지우고 핀크스 자체의 개성을 살려내려 노력하고 있다.

(대기업에 인수되기 전에도 이 골프장은, 처음 문 열던 1999년 한일여자프로골프 대항전 ‘핀크스컵’을 창설하여 2008년까지 열었다. 첫해와 둘째 해 대회까지 완패하던 한국여자 선수들은 세 번째 대회부터 승리하기 시작하고 한국 여자 프로골프의 위상과 자신감은 비약적으로 고양되어 일본을 압도하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 문화적 개성이 넘치는 골프장에서, 그것도 (사회적 기여를 기업의 주요 가치로 내세우는) SK 쯤 되는 대기업그룹이 후원하는 대회라면.....  


지금보다 훨씬 클래스가 높은 ‘문화 축제’를 지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


낮에는 제주 중산간에서 열리는 골프대회를 보고, 밤에는 제주 바닷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울고 나서 불현듯 적는다.  


(‘한국의골프장이야기’ 둘째 권에 ‘핀크스 골프클럽’ 편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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