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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Jun 05. 2023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백수가 사는 법



4월 말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갑작스러운 직장 폐쇄로 실업자가 되었다.  퇴사는 언제나 내 결정이었고 특히나 회사가 문을 닫는 것은 상상도 못 했었다.  이렇게 운영하다간 결국 문을 닫게 될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런 일이 말처럼 쉽게 일어나는 일인가.  최소한 내가 결정할 때까지 건재해 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불과 십여 일을 남겨두고 짧은 통보를 받으니 충격이었다.  




낙천적인 내 성격도 준비되지 않은 미래에는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냥 회사와 이런저런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으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불안을 숨기기만 했다.


명함이 없어지고 한 달이 지난 지금, 모자란 잠을 자다가 갑자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공포를 느끼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낯선 목소리가 해를 비집고 내게로 들어왔다.  한동안 두려움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이대로 죽는 건 아닐까,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끝나도 되는가.'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눈동자 마저 꿈쩍하지 않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찬물에 밥을 말았다.  썰어서 물에 담가놓은 오이장아찌가 아삭아삭해서 '물만밥'과 잘 어울렸다.  엊그제 만난 여동생이 이제는 뭘 할 거냐고 물었었다.  꼭 뭔가를 해야 하냐고 반문했지만 내 눈은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뿐 막막하기만 했었다.


'해외여행이나 가볼까, 자원봉사를 찾아볼까.'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구나.'  사회와 격리된다는 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갇히고 말았다.


몇 주 전에 신청해 놓은 실업급여는 얼마 전 일주일분이 입금되었다.  내 생활규모에 택도 없는 금액이었지만 처음에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 당분간 최소한으로 살자, 필요 없는 쇼핑은 줄이고 번들로 사던 버릇도 고쳐보자. 사람은 다 살아가게 되어 있지 누구는 미니멀로도 행복하다잖아.'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선언을 했다.  




할 일이 없다는 것, 두 손이 놀고 있다는 것, 고민할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은 엄마를 빼앗긴 아기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에 노트북을 들고 커피숍에 가면 말끔히 양복을 입고 스마트폰 액정을 보거나 포켓북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피해 놀이터 그늘에 앉아 있으면 백팩을 등에 맨 넥타이맨이 쓸쓸히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그 사람들 모두가 나와 같은 처지는 아니겠지만 많은 순간이 내 거울이 되어 슬프게 만들었다.  


글을 쓰고 동호회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별로 신나지 않고 슬슬 내가 하는 일이 생산적인 일인지,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적더라도 수입이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함은 경제활동을 축약적으로 표시한 이름표다.  유튜브에서 목표가 없는 사람은 어쩌고 저쩌고 클릭을 유도하는 썸네일이 시도 때도 없이 뜨는 것을 보니 구글 알고리즘은 내 마음도 읽고 있나 보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공단에서는 실업급여가 지급되는 동안에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취준생 신분으로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는 것 외에 다른 경제활동은 허락하지 않았다.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예산 부족 문제도 있으니 규칙을 정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저시급에 준하는 금액을 받다 보니 자녀를 둔 외벌이 가장에겐 견디기 쉽지 않은 수준일 것 같기 하다.  나부터 잔뜩 긴장하면서 카드를 긁고 있으니 이런저런 형편들에 감정이 이입된다.  어쨌거나 입사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어떤 회사의 사무직 직원으로 어떤 매장 매니저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것은 더 이상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사회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자 실업급여를 받는 몇 달 동안 내 고민에 대한 명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어찌 되었든 이번만큼은 반듯이 파고를 넘어야 한다.  쭈뼛되지 않고 오는 파도에 몸을 실을 용기를 내서 나아가야 한다. 그 여정의 동반자로 글과 함께 가기로 했다.  주춤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잠시 쉬면서 앞으로 나아갈 도구로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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