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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Jun 27. 2023

마라톤 입문기


D-day를 앞두고 오락가락하던 날씨가 기우는 거울에 비치는 핑계일 뿐이라고 나무라듯 쨍한 아침을 내주었다.  인근에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탄천 다리 아래에는 전국구로 활동하는 '달리기 꾼들'을 포함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개막을 알리는 구청장 대행의 인사를 흘리면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팔다리에 근육이 멋지게 붙은 사람들, 소속 클럽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 나처럼 이 모든 광경이 처음이라 마냥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영동다리 밑은 마치 아이돌 그룹의 공연장 앞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긴장했는지 전날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행사장에 일찍 도착했는데 역시 잔뜩 위축돼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서라면 서는 착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대회에 정식으로 참가 신청을 낸 사람들이 먼저 출발했다.  기록에 따라 순위가 결정되고 상금이 주어지니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다.   5분 정도 차이를 두고 드디어 나머지 참가자들의 출발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오늘의 동반주행 파트너와 타이머를 눌렀다.




5년 전부터 친구가 같이 뛰자고 연락을 했었다.  친구는 내가 평소 운동을 싫어하고 귀차니즘 끝판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엇! 나한테?'라고 의심하면서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있었는데 올해 4월 마침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어느 날 다시 전화가 왔다.  

"마라톤 시작하자, 백수니까 시간 없다는 말은 말아.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운동복 입고 수서역으로 와."

"아니 뭐 이런, 뭐라는 거냐 지금?"

.......

"어... 그... 네 생각에는 내가 뛸 수 있겠냐?"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싫으면 관두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럼, 나도 뛰는데 걱정 마셔!"

"알았어, 생각해 볼게."  더 이상의 거절이 미안해서 어정쩡하게 대답을 해버렸다. 

친구는 내 대답의 의미를 알고 있다.  


마침내 오리엔테이션 날

복장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해서 집에서 입는 반바지와 면티를 입고 갔다.  에코백에 물티슈 하나 달랑 들고 터벅터벅 탄천 다래로 갔더니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고 있었다.  


매주 토요일 7주 훈련이 끝나고 8주 차에 구청장배 10Km 마라톤 대회에서 동반 달리기를 하고 수료증을 준다고 했다.  아니 달리기에 수료증은 뭐고 대회는 또 뭔가.  울상이 된 얼굴을 감추고 일단 훈련을 시작했다.

- 몸풀기

- 기초 훈련

- 자세 훈련

- 1km씩 4번 달리기

- 신입 회원 문제점 등 설명

- 마무리 운동


첫날 4km나 달렸다.  1km도 달려본 적 없는 내가 4km를 달리다니 발목이 후끈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게다가 자원봉사자가 훈련 모습을 계속 카메라에 담고 있어서 뒤로 빠지거나 힘들다고 엄살을 부릴 수가 없었다.  마음속에서 어느 글자들이 두서없이 폭발하고 있었다.  "줸! 장!"


일주일 내내 갈등을 했다.  6주를 더 하고 10km 라니 친구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안 쓰는 근육을 잔뜩 써서 절룩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우유부단한 내 성격 탓에 일주일 내내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2주 차는 강도가 더 세졌다.  기초 훈련이 다양해지고 1km씩 달리던 연습도 중간에 쉬는 시간을 줄였다.  자원봉사 하는 분이 찍은 영상과 개인별 운동 사진이 단톡방에 올라왔는데 내 모습을 보는 게 고역이었다.  몸은 앞으로 쏠리고 다리는 질질 끌고 쓸모없는 뱃살은 상하운동을 하고 있었다.  민망한 영상을 이 클럽 회원 모두가 본다는 생각을 하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게다가 앉았다가 일어나면 땀 때문에 바지가 엉덩이에 눌어붙었고 면티는 땀을 날리지 못해 몸을 휘감았다.  모든 것이 스트레스였지만 친구에게 더는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 우물쭈물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2주 훈련 후 무릎에 염증이 와서 정형외과에 갔다.  3,4일 간격으로 주사를 세 번 맞고 약을 먹어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선생님, 저 운동하지 말아야겠죠?"

"근육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갑자기 뛰었으니 당장은 하지 말아야지요.  그렇지만 지금 그만두면 앞으로도 운동은 하기 어려울 거예요.  좀 걸을만해지면 천천히 다시 시작해서 근육을 키워요.  다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무릎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료하시는 진정 '명의'를 만난 거다. 

천장을 보고 누운 물리치료실에서 결정을 했다.  

"그래 운명이다."


3주 차는 증상이 심해서 결석하고 4주 차에는 훈련에 참석했는데 나는 걸어야 했다.  다른 회원들은 7km를 뛰었는데 나 혼자 절룩절룩 3km를 걸었다.  


'가슴이 콩당거렸다.'  이런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어쨌거나 포기하면 후회할 거라는 뜻이다.  

본격적으로 참여해 보기로 하고 친구에게 대회 날 동반 달리기 부탁을 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쌍따봉을 날려주었다.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어낸 듯 편안해졌고 일주일에 두 번씩 집 근처 공원을 달리며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기록은 나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완주를 위해 심리적 거리감과 실제 거리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철인 3종 경기나 울트라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도 있는데 웬만하면 뛸 수 있다는 10km에 내가 너무 비장한가?  다행히 식구들은 참가한다는 결정만으로도 다 해낸 것처럼 응원을 해주었다.  

나는 이제 '대한 체육인'이다.


7회 마지막 훈련까지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계속해서 엉덩이가 뒤로 밀리고 몸이 앞으로 숙여지고 고개가 들리는 문제들을 고치기 위해 움직였다.  선배님들이 찍어서 올려준 영상 속 내 자세는 비루했지만 계속 연습하면서 고치는 방법 밖에 없었다.  후회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다.  




기록도 나쁘지 않았다.  '꼴찌라도 좋다, 완주만 해다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끝까지 동반해 준 친구 덕분인지 시간을 16분이나 단축했으니 꽤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냈다는 기쁨이 축제날 팝콘처럼 가슴에 팡팡 터졌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너무 좋았다.  

이런 자기 효능감이 얼마만인지 이날만큼은 날개가 타들어가도 태양 가까이 더 가까이 날아보고 싶었다.


옷을 갈아입고 신입 회원 수료증을 받기 위해 식당에 모였다.  각자 자기가 뛰면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니 식당 안은 초등학교 교실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아,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는 통쾌함인가, 해방감인가, 모두들 희열로 들떠 있었다.


돌이켜 보니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그저 친구가 내민 손을 잡았을 뿐이었는데 파도 위에서 넘실대며 더 먼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 배우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했던 수상소감이 생각났다.  

"나는 그저 차려 놓은 밥상에 수저만 들었을 뿐인데, 이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더니 드디어 출반선에 서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마라톤 이력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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