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엄마의 정기검진 날로 대략 3개월에 한 번씩 신장이 좋지 않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온다. 보통 병원 1층에 면담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도착하면 채혈을 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한다. 식후 피검사를 위해 다시 한 시간을 기다리고 번호표를 뽑고 피검사를 하면 드디어 3층 선생님이 계시는 신장과로 올라갈 수 있다. 진료 전에는 혈압과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긴장으로 혈압이 높으면 진정하고 몇 차례든 다시 재야 한다. 그렇게 마치고 다음 예약일을 잡은 후 집에 돌아오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게 되고 길게 뻗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까지 합치면 꼬박 하루가 걸린다. 병원 가는 일은 어렵지는 않지만 번거로운 일이다.
매번 병원을 다녀올 때면 엄마랑 싸웠다. 출발 전부터, 도로 위에서, 다녀와서 사소한 이유로 예민녀들이 부딪쳤는데 결과는 내가 항상 이겼다. 이긴 것이 아니라 엄마가 져 주신거지만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서로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오늘은 미리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절대 큰소리 내지 않고 마무리 잘하자. 할 수 있어 아자아자!' 며칠 전부터 다짐했는데 정작 아침이 되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
태풍으로 며칠 전부터 비가 와서 택시를 탈까 하다가 얌전하게 내리는 비를 보고 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떤 신발을 신을지 고민하시길래 짧은 장화를 권했고 우산을 챙겼다. 1층에서 혈압 노트를 잊고 왔다고 하시길래 다시 올라오고, 내 신발이 추워 보인다며 운동화로 갈아 신으라고 해서 또 올라왔다. 그렇게 우리는 30분을 낭비했고 일찍 나온 보람도 없이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는 힘이 빠졌다.
환승역까지 걸어도 좋았는데 굳이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기다려야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고 내리는 정거장에서 마침 갈아타야 할 버스가 왔지만 주춤대는 엄마 때문에 놓치고 말았다. 엄마와 조금 떨어져서 하늘을 보고 있자니 10여분 후에 다음차가 와서 남인 듯 아닌 듯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의사 선생님이 당뇨병이라며 약을 먹고 식이조절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우물쭈물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는 우리에게 그럼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3개월 후에 수치를 조절해 오라고 하셨다. 우리는 시간을 벌었고 어떻게든 해야 한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식이조절이 필요하다고 식단표와 음식 단위당 칼로리, 추천 재료, 비 추천 재료, 요리 방법 등을 덕지덕지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는데 그 모두를 잔소리로만 들었던 엄마가 이제 식이조절을 해야 한다고 심각해하신다. 내가 최근 자주 먹은 과일과 옥수수가 들어간 밥이 갑자기 수치가 높아진 원인인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럼 뭘 먹어야 하냐고 화를 내셨다. 안내문에 먹어도 좋은 식재료가 적혀 있다고 설명을 해도 먹지 못하는 재료에 꽂혀서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처방약을 정리하다가 약 종류마다 남은 개수가 달라서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약을 빼먹고 드시나?' 분명히 매번 3개월치를 받았는데 이상해서 이유를 물으니 내가 어떻게 아냐고 화를 내셨다. 그러면서 "너는 뭐든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보냐? 정말 짜증 나."라고 하셨다. 병원 다녀오느라 피곤해서 예민한 거다 속으로 체면을 걸고 그냥 알겠다고 했다. "짜증 나게 해서 미안해."라고 말하며 물러섰는데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앗싸, 성공이닷.' 라며 승리의 쾌감이 올라온다.
싸움도 엄마가 여전히 건강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다음에는 택시를 미리 불러놓고 혈압 노트도 내가 챙겨놔야겠다. 하나씩 원인을 줄이면 우리도 손 붙잡고 다닐 수 있겠지.
엄마 제발 우리 친하게 지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