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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양 Dec 30. 2023

대화를 훔치는 사람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의 유형

"저는 운동하는 거 좋아해요"
"나도 운동하는 거 진짜 좋아해! 그래서 요즘은 조깅도 하고 헬스도 해. 심지어 요즘은 주 3회씩...(중량)..."
"아... 네..."


오랜만에 후배랑 만나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날 나는 대화를 훔치는 사람이었다. 하필 그것도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 하는 유형, 그 모습 그대로가 바로 '나'였다.




#대화를 훔치는 사람


"이번주에 부장님이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 있지."
"와! 나는 더 심했어. 우리 부장님은 나보고 자료를 하루 만에 다 정리해서 제출하라고 하는데... (중략)..."
"어... 진짜 힘들었겠다."
"진짜, 말도 마. 더 심한 것은 뭔지 알아?! 글쎄...(중략)...


   내가 부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무섭게, 나의 말을 가로채 본인의 힘든 이야기를 꺼내는 지인이었다. 한 가지 이야기를 꺼내면,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까맣게 잊고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기 급급했다. 이런 대화 속에서 나는 대화를 도둑맞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종종 '대화를 훔치는 사람' 들을 만난다. 상대방의 꺼낸 대화 소재를 가로채 자기 이야기로 가져가는 사람들 말이다. 모든 대화의 끝이 본인 이야기로 끝나는 사람과의 대화는 무척 피곤하다. 번번이 가로채일 때마다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대화가 즐겁지 않고, 또 쏟아내는 이야기를 잘 듣기 위해서는 오랜 인내심이 요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있으면 불필요한 대화를 줄이고 자리를 피하게 된다.



# 그토록 피하고 싶은 유형의 사람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랜만에 후배를 만나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날 나는 후배가 꺼낸 대화의 대부분을 가로채 내 이야기를 쏟아 냈다. 공감하고 잘 들어주겠다는 마음은 앞섰을 뿐 방법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결국 후배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내 이야기만 주구장창 떠들다 왔다. 그날 이후로 후배는 내 연락을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내가 그토록 기피하는 하는 '대화를 훔치는 사람'이 결국 '나'였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는 한동안 나 스스로 얼마나 자괴감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나의 의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행되었던 것 같다.


   타인의 흠은 잘만 보면서 나의 흠은 제대로 보지 못해 스스로 무척 부끄러웠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내 마음과 혀를 다잡는다. 최대한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잘 듣자고 매일 아침 마음속에 그날의 교훈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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