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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May 18. 2024

그래, 이래서 우리는 여행을 가야 돼

아들 태민이는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비행기에서 창 밖 내다보기, 호텔 새 침대에서 방방 뛰기, 새로운 음식 맛보기,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 등등 모든 게 다 재미있는 모양이다. 평소엔 아침에 깨워도 꿈쩍도 안 하는 녀석이 여행 가는 날은 "... 여행!"을 외치며 일어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실소가 나온다. 와이프와 내가 별생각 없이 밥상에서 얘기한 여행 계획을 언제 다 들었는지 뜬금없이 자기 전에 "5월 바다!" 혹은 "11월 한국!"이라고 외쳐서 우리를 놀라게 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긴 나도 좋아하는 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보고 외우게 되더라. 자폐를 가진 이 녀석이라고 다르진 않겠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태민이는 호텔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집에 가자고 울어댔었다.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자폐인의 특성이기도 하고, 어리고 언어 발달도 느렸기에 자신의 어려움을 울음과 거부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겠지.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샌가 여행 자체를 즐기고 기다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여행이 아이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킬 것이라는 우리 부부의 믿음이 이렇게 증명되었으니까.  






2017년에 미국에 온 후로 정말 숱하게 여행을 다녔지만, 지난달 다녀왔던 보라보라는 '지상에 낙원이 있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은 곳이었다. 신비로운 색의 바다와 기기묘묘한 산호들, 맑은 물에서 노니는 수십 수백 종의 물고기들, 잔잔한 파도와 따뜻한 바닷물까지. 5박 6일이 지루하면 어쩌나 했던 생각은 그야말로 기우였고,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줄어드는 시간을 아까워하며 평생 다시 오지 못할 이곳을 만끽했다.   




여행 후 바쁘게 새 회사에 적응해서 일하다 보니 어느샌가 보라보라에서 돌아온 지 꼭 한 달이 되었다. 아직도 내 페이스북 앱에서는 보라보라의 고급 리조트 광고들이 종종 보이는데, 아래 같은 광고 사진을 보다 보면 가슴이 헛헛한 아쉬움으로 가득 찬다. 저 꿈같은 곳에 있었던 게 고작 한 달 전 일인데 왜 몇 년은 된 것처럼 아득한 걸까? 정말 정말 좋았었는데 과연 또 가 볼 수 있을까? 



아이 양치를 시키고 있던 와이프에게 폰을 들고 가 사진을 보여주니 와이프도 아쉬움의 장탄식을 토해낸다.  

바로 그때 아이에게서 들려오는 한마디 

"보라보라!"


깜짝 놀라 마주 본 우리 부부를, 아이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너도 보라보라에서의 기억이 좋았구나. 한 장의 사진을 보고도 기억날 정도로.

한 달이나 지났는데 그곳의 이름이 보라보라라는 것까지 기억할 정도로 좋았구나.  


이래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다녀야 한다.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도록. 함께했던 즐거운 순간순간을 기억하도록.

그 순간에 힘입어 한 발짝 더 성장하길 바라며, 나는 또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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