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민이의 첫 Challenger Jamboree
5월 둘째 주 일요일은 어머니날, Mother's day다. 해당 주말은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하는 기간이기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들은 가족 식사로 북적거리며, 바쁘게 사는 자식들도 이때만은 부모님을 찾아뵙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조금 다른 이유로 이 주말을 손꼽아 기다린다. 매년 5월 둘째 주마다 Virginia Beach에서 열리는 Challenger Jamboree 때문이다. 벌써 30년이 넘게 열리고 있는 이 행사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장애 아동 및 청소년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매년 야구를 하고 친교를 나누는데, 우리 가족은 이번 주말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금요일에 업무가 끝나자마자 3시간 반 넘게 차로 달려 밤늦게 호텔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다음날 아침이 피곤할 수밖에 없는데,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북적대는 분위기에 정신이 확 들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경기가 열리는 Azalea Little League Field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버지니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웨스트 버지니아, 필라델피아 등 차로 5-6시간 걸리는 타 주에서 참가한 팀들도 있다고 한다.
열개가 넘는 팀들이 각각 정성스레 만든 Team Banner를 앞세워 경기장으로 행진했고, 이어 Opening Ceremony가 시작되었다. 목사님의 "Heavenly Father..."로 시작되는 기도와 자폐를 가진 선수 대표가 더듬더듬 읽어 내려가는 Little League Pledge - "I Trust in God, I love my country and will respect its laws.." - 를 들으면서도 가슴이 찡해졌지만, 정작 눈시울이 뜨거워진 건 사회자가 "여기 있는 수백 명 중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 모두 자발적으로 참석했다"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던 때였다. 선수와 가족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경찰관, 안전요원, 의장대, 사회자, 축가, 행사 담당자, 심판 등등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해도 최소 수십인데 이 모두가 자원봉사자라니, 그리고 이런 행사가 3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니. 아, 이게 이 나라의 힘이구나, 이것이 미국 지역사회의 힘이구나...
이방인으로 수 년째 살며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차마 돌아갈 결심을 하지 못하는 건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꿈꿀 수 없는 이런 분위기와 사회적 자본, 그리고 기회들. 여기가 아니라면 태민이가 과연 야구를 경험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웃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을까? 난 도저히 자신이 없다.
나이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누어 경기를 하긴 하지만 경쟁이나 승패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응원석의 모두가 팀을 가리지 않고 격려하는 따뜻한 분위기에서 경기가 진행된다. 휠체어를 타고 겨우 배트를 잡고 휘두르는 소녀도, 팔 한쪽이 없어 한 팔로만 방망이를 휘두르는 소년도, 열 번이 넘는 헛스윙에 얼굴이 빨개진 아기도 어떻게든 공을 배트에 맞추고 나서는 신이 나서 1루 베이스로 달려 나간다. 그간의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태민이도 두 번의 타석에서 꽤나 잘 맞은 타구들을 만들어냈다. 작년 가을 처음으로 리그를 시작했을 때 도저히 공을 맞출 수 없어 코치들이 뒤에서 대신 스윙해주다시피 하던 걸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한 시간 동안 2이닝을 마치면 경기 종료. 양 팀 선수들과 버디 (장애아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어른이나 아이)들이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으면 첫날 경기가 종료된다. 오늘은 버디들의 숫자가 충분하지 않아 내가 태민이의 버디로 참가했는데, 자꾸 딴짓을 하고 도망가는 녀석을 어르고 달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매주 일요일마다 태민이를 맡아주는 버디들에 대한 감사함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경기 이후는 자유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니 멋진 Virginia Beach의 해변이 우리를 반긴다. 5월 초라 아직 바닷물이 차긴 하지만 부드러운 백사장과 적당히 거친 파도는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부모들은 감히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멀리서 파도소리와 풍광을 즐기지만 아이들은 어느샌가 깔깔대며 홀딱 젖어있다. 그래. 젋은게 좋구나. 어머니께 말씀드리면 등짝 맞을 생각을 잠깐 해 본다.
"We gather in Mother's day weekend every year. It has become a new tradition".
우리 팀 담당 코치인 Adam의 말처럼 Virginia Beach와 Challenger Jamboree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전통이 될 것 같다. 태민이와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친구들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벽을 넘고 편견에 도전해야 되는 그들에게, Challenger Jamboree가 꿈과 도전, 성취의 장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순 없죠
<거위의 꿈, 인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