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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Mar 16. 2024

땅나 땅나

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테라피가 있는 날은 주로 내가 학교에서 아들 태민이를 찾아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테라피 센터에 내려주곤 한다. 짧지 않은 시간이기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기도 하고 (물론 제대로 답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오늘 스케줄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어떨 땐 묵묵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갈 때도 있는데, 내가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아이는 다른 차들을 구경하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혼자 신나서 낄낄대거나 어찌 됐건 늘 바쁘기 때문이다. 


한 절반쯤 왔을까, 아이가 "땅나"라는 말을 반복했다. 혼자 중얼중얼할 때는 아이의 행동을 강화 (reinforce) 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반응하지 않으려 하는데, 뭔가 느낌이 달라서 "아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물었다. 한국말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영어 같지도 않은데 저게 대체 무슨 말이지? 학교에서 배웠나? 아니면 유튜브나 영화에서 들은 말인가? 


내가 못 알아듣고 있으니 자기도 답답한지 또박또박 크게 반복한다

땅 나

땅 나

땀 나


"아 땀난다고? Do you need the AC on?"이라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에어컨을 틀어주면서 

"I am sweating (땀나요)"

"Can you turn on AC please? (에어컨 틀어주실 수 있나요?)"

라는 문장들을 가르쳐 주었다. 한국어를 못하는 미국인 교사나 테라피스트들한테도 똑같은 요청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무언가를 요청한다는 행위는 자폐 아동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배고픔이나 졸림 등을 표현하는 건 본능의 영역이라 쉬울 수 있지만, 온도, 조명, 소음 등이 맘에 들지 않아 타인에게 바꿔달라 요청을 하는 건 상대적으로 훨씬 어렵다. 자폐 아동을 뒷좌석에 태우고 장시간 운전했더니 땀에 푹 젖어 헉헉대고 있었다는 류의 이야기들이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이유이기도 하고. 태민이만 해도 여태까지는 더운지 추운지, 에어컨이 필요한지 히터가 필요한지 물어봐도 별 반응이 없었기에 아직 이 단계까지는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워진 날씨가 불편했는지 느닷없이 땀이 난다며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봄의 따뜻함이 불러온 귀한 선물에 감사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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