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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Feb 17. 2024

팔꿈치의 침자국

아들 태민이의 재킷은 늘 엉망진창이다. 자폐 아동들의 흔한 증상 중 하나가 (아마도 신경 발달의 더딤으로 인한) 소근육 활용능력 부족인데, 그래서인지 손을 민활하게 사용하지 못해서 수저나 포크를 쓸 때 자주 음식을 옷에 흘리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소매를 걷어올리지 않고 무신경하게 흐르는 수도꼭지에 손을 가져다 대고 팍팍 손을 비벼대기까지 하니,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맞이하면 소매는 늘 푹 젖어있고 몸통엔 음식 찌꺼기가 달라붙은 후줄근한 몰골일 때가 꽤 많다. 


어제 와이프가 태민이 패딩의 팔 부분이 꽤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고, 요새 부쩍 늘어난 침 뱉기 장난을 옷에다 대고 했다 생각하여 한소리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혼나면 보통은 풀이 죽거나 화가 나서 꽥 소리를 지르는데, 어제는 놀랍게도 “when I am coughing  (기침할 때 그랬어)" 말하면서 젖어있는 재킷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침이 튀지 않도록 가리라고 가르치는데, 손으로 막으면 나중에 손에 묻은 세균이 그 사람이 만진 물건이나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아래 그림처럼 팔꿈치 안쪽으로 가리는 방법이 권장된다. 재채기가 나올 때 배운 대로 팔꿈치로 가렸고, 그때 침이 튀어서 재킷이 젖은 거라고 엄마의 부당한 비난에 맞대응을 하다니... 요새 말이 많이 늘은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와이프의 카톡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민자의 삶은 언제나 힘들지만, 그래도 나이테처럼 순간순간 새겨지는 이런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 있어 어떻게든 버텨지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을 자주 접하길, 감사함을 잊지 않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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