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오후 4시. 강력한 라이벌 Dragons와의 결승전이 열렸다. 리그 전적 9승 1무 2패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시즌 1위를 차지했음에도 굳이 한 팀을 라이벌이라 칭하는 건 올해 유독 Dragons와의 경기가 늘 치열했기 때문이다. 한 경기는 1점 차의 신승, 한 경기는 무승부, 다른 한 경기는 큰 점수차로 패배... 시즌 1위의 혜택으로 3전 2 선승의 결승전에서 1승을 미리 안고 시작했기에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려운 상대를 만난 데다 팀의 강타자 겸 마무리 투수인 R이 나오지 못했기에 경기 전 더그아웃의 분위기는 마냥 가볍지 않았다.
선발 투수는 우리 팀의 유일한 선수 출신 B. 20대 초반답게 패기 있는 묵직한 패스트볼과 그날따라 더욱 예리하게 꺾이는 변화구로 타자들을 상대해 나갔다. 하지만 상대 팀은 3번 타자의 중월 2루타로 주자 두 명이 모두 홈을 밟으며 앞서 나갔다. 반면 우리는 상대 선발 S의 구위에 눌려 3회까지 아홉 타자 모두 범타로 돌아섰고, 당연히 공수 교대 때마다 상대 팀의 더그아웃은 환호로 가득 찼다. 전혀 예상 못한 전개에 우리 팀 모두 당황했고, 특히 내 경우엔 와이프와 아이가 경기 중 후반쯤 관전하러 올 예정이었기에 하나의 고민이 더해졌다.
'..... 어째 득점도 얼마 안 나고 일찍 끝날 분위기인데? 오지 말라고 해야 되나??'
0:2로 두 점 뒤진 채 시작했던 4회 초, 지금 돌아보면 1번 타자의 사구가 시작이었다. 몇 개의 안타, 볼넷, 그리고 상대 팀의 실책까지 이어지며 어느새 점수는 7:2로 역전. 2 아웃에 주자 1,3루 상황에서 다시 내 타석이 돌아왔다. 내 첫 타석에서 직구를 던지다가 외야로 날아가는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맞아서였는지 상대 배터리는 둘째 타석에선 잘 던진 변화구로 땅볼을 유도했고, 셋째 타석에서도 단 하나의 직구도 쓰지 않고 변화구로 승부해 왔다. 보통 직구의 비중이 80%를 넘어가는 아마추어 야구에서 이런 볼배합은 극히 드문데, 상대 투수가 이 날따라 변화구의 제구가 좋기도 했고 몇 년간 상대하면서 내가 패스트볼에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볼배합을 들고 나왔으리라.
1구 슬라이더 (헛스윙)
2구 커브 (스트라이크 콜)
3구 커브 (파울)
4구 커브 (파울)
5구 슬라이더 (파울)
2 스트라이크에 몰린 상황에서 3개의 잘 던진 변화구를 커트해 가며 버텼고, 이제 직구 하나 던지지 않을까 싶은 타이밍에 또다시 낙차 큰 커브가 들어왔다.
'딱'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기분 좋은 손맛.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고, 오른팔을 번쩍 들며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좌익수는 몇 발 뛰다가 포기하고 멈춰버렸고, 공은 약 110미터를 날아가 펜스를 훌쩍 넘어 풀밭으로 들어갔다. 스코어 10:2. 상대 팀은 선발 투수를 교체했고, 이후 3이닝 정도 경기가 진행되며 약간의 공방이 있었지만 사실상 이 홈런이 나온 시점에 경기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한방이었다는 것을 경기장에 있는 모두가 느꼈으니까. 사실상 승부가 갈리자 마음이 가벼워진 우리 팀은 바뀐 투수를 계속 두들겼고 결국 최종 스코어 18:8로 Angels가 승리하며 리그 2연패를 확정. 7:2에서 10:2를 만든 내 3점 홈런이 결승타가 되었다.
15년간 아마추어 야구를 하면서 다양한 팀에서 운동을 했지만 Angels만큼 열심히 연습하는 팀은 단연코 없었다. 연습하자고 하면 처음 한두 번은 잘 모이다가도 개인 사정과 업무로 한 명 두 명 빠지며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절대다수인데, 우리 팀은 벌써 3년째 시즌 내내 매주마다 연습을 해 오고 있으니까. 실내 연습장을 예약하며 운영비 대부분을 담당하시는 감독님의 열정이 있고 팀원들의 높은 참여가 있기에 실력이 향상되고 지금처럼 단단한 팀이 될 수 있었으리라.
부디 내년에도 다들 부상 없이 열심히 해서 리그 3연패를 달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