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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레놀, 자폐, 그리고 놓치고 있는 요인들

by Sol Kim

이틀 전, 미국 정부가 임신 중 타이레놀 섭취는 태아의 자폐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공식 기자회견 전부터 해당 뉴스는 ‘자폐의 원인을 찾았다’는 식의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함께 여러 매체를 타고 번졌다. 회견을 본 소감은...복잡하다. Autism Spectrum이라는 복잡한 신경발달 장애를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 단정 지을 수 있다면 그걸 우리 삶에서 제외하면 되겠다만, 내가 자폐인 부모로 살면서 얻은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CDC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진단 비율은 2000년경 150명 중 1명에서 2022년 기준 31명 중 1명으로 급증했다. 20여 년 만에 자폐 아동의 비중이 4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이 숫자만 보면 ‘자폐 유발 요인’에 대한 공포가 커질 수밖에 없고,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1) 자폐에 대한 인식(Awareness), 그리고 진단 체계의 정교화

돌이켜보면, 우리 학창 시절에도 수업 중 대답을 잘 못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어딘가 혼자였던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 같으면 (특히 미국에서 태어난 경우) 대부분 어린 나이에 자폐 스펙트럼 조기 진단을 받고 ABA 치료를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특이한 녀석”, “어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로 낙인찍혀 고립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사회 전체의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정교한 진단 기술이 발전했기에 이전 같으면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되었을 아동도 요새는 자폐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이 경우는 '자폐 아동 비중이 늘어났다'가 아닌 '자폐 아동의 진단이 늘어났다'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2) Personal Screen
요즘 아이들은 생후 몇 년 만에 폰이든 패드든 각자의 전자 기기로 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사람과 주변 환경을 느끼고 소통하는 대신 조용히 화면 속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라다 보면 자연스레 눈을 마주치고, 감정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 줄어들게 된다.

주변 가정들과 Play date를 하다가 깨닫게 된 건, 심지어 일반 아이들조차 다른 아이와 어울리는 게 아니라 패드나 폰을 보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같이 어울린다면 그건 같은 폰 게임을 하면서 겨루는 정도? 이렇게 인간 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감소된 환경 하에서 커뮤니케이션에 취약하게 태어난 아이가 별다른 보조 없이 자란다면 그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 1980-90년대라면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애”로 자랄 아이가 현대에 태어난다면 ‘자폐 아동'이 되는 것이다.



3) 유전 and/or 가정환경

아내가 일하는 ABA 센터를 통해 나는 자폐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한다. 놀랍게도 자폐가 있는 고객들 중 상당수는 형제 중 한 명 이상이 자폐를 겪거나, 자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아동 31 중 1명이 자폐 진단을 받는다는 걸 생각해 보라). 물론 이건 개인적인 관찰에 불과하며, 이 결과가 유전인지, 가정환경인지, 혹은 그 둘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것인지 검증할 수는 없다. 다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패턴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며, 아들 태민이가 자폐 진단을 받은 후 우리 부부가 더 이상의 자녀를 가지지 않기로 결심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 유전적 요인, 디지털 환경, 가정 내 상호작용, 어쩌면 타이레놀 같은 화학물질까지... 자폐는 이 중 하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자폐의 원인보다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사회가 어떻게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자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으니, 언젠간 자폐 아동들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는 보다 넓은 사회가 열리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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