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혁명을 상징하는 210cm 거대 펭귄 앞에서
펭수.
이젠 '대슈스'가 되어 진정한 참치길을 걷고 있는 210cm 거대 펭귄이다. 우주 대스타가 되고 싶어 남극에서 헤엄쳐서 한국까지 온 괴력을 가졌고, 미역 달고 EBS에서 오디션 보면서도 당당하기 그지 없는 펭귄이다.
내가 펭수에게 빠져든 건 '자이언트 펭TV'의 구독자 수가 3000명 대였을 때였다. 지인이 "엄청난 펭귄이 나타났다"며 소개했다. 남다른 선구안을 갖고 있는 지인이라 믿고 보기 시작했다.
펭수가 새로운 프사(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벚꽃 구경을 하러 나온 에피소드였다. 봄꽃 구경을 하러 나오면서 머리에 헤드셋을 하고 여름꽃 해바라기를 꽂은 펭수는 나의 메마른 가슴 속으로 파고 들었다. 분명 똑같은 표정인데 상황에 따라 '천의 얼굴'이 되는 것도 펭수만의 매력이었다.
서른 여덟 해의 인생 동안 아이돌 덕질 한 번 안 해 본 내가 왜 펭수에게 빠져들었을까. 사실 사랑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직업병이 도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난 '사랑해선 안 될 존재'를 사랑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펭수는 한국 미디어 혁명의 현재진행형 상징이니까. 그리고 난 전통 매스미디어의 대표인 신문 기자니까.
펭수의 (자기소개서 상) 나이는 '10살'이다. (n차 10살인진 아무도 모른다.) 예전 같으면 '펭수는 펭귄의 탈을 쓴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펭수'를 치면 '펭수 정체'가 연관 검색어로 지금도 같이 뜬다.
하지만 펭수는 그런 호기심을 역으로 찌른다. "펭수는 펭수일 뿐인데 왜 궁금해 해?" 제작진은 EBS 기자, 수의사까지 동원해 "펭수는 펭수다"란 '단순한 결론'을 내린다. 유튜브 구독자들도 "알면서 속아준다"란 개념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펭수를 그저 펭수로 대한다.
펭수는 순위를 매기지도 않는다. 11번째 에피소드인 '금손 성덕 파티, 제1회 펭수 표현하기 대회'에서 그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이들부터 '전날 술 먹고 지각한 어른'까지 폭넓은 연령층의 팬들이 펭수를 그리고, 찰흙으로 빚고, 로봇으로 만든다. 펭수는 참가자 모두에게 '최우수상'을 줬다. "다른 애들은 상 받고..."라며 우는 아이를 따뜻하게 다독인다.
이른바 '어른의 사정' 따윈 펭수의 사전에 없다. '소속사 사장'인 김명중 EBS 사장은 '김명중' 세 글자로 통한다. 돈이 없을 때 항상 '김명중'을 외친다. 무슨 일만 생기면 "매니저!"를 외치며 앙탈을 부려 '펭성(펭귄+인성) 논란'이 불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선을 넘지 않으며, 매너 있는 배려로 마무리된다. SBS의 '스카웃 제의'를 받지만, 참치캔 케이크 사이에 닭가슴살캔이 있는 걸 보고 주저 없이 EBS로 돌아간다. EBS에선 자신이 참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알아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펭수의 대히트는 정치부 기자인 나에겐 대단한 충격이었다. 정파와 이념으로 편 가르기, 정보를 위에서 아래로 전달한다는 사고방식, 조직 내 상명하복 등을 모두 뒤집는 펭수는 콘텐츠 이용자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반영하고 있었다.
나 역시 매일의 뉴스가 주는 피곤함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고 있기에 결국 펭수를 사랑하게 되고 말았다. 매일 아침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로 시작하는 기사를 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진을 본다는 건 정말 큰 고통이다. 배우 정우성의 사진을 매일 매일 본다 해도 지겨운 순간이 올 텐데 말이다.
(지난 10월 17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엔 첫눈이 내린 백두산에서 김정은이 백마를 타고 다니는 사진이 실렸다. 그 날 정신줄을 붙들기 위해 펭수 동영상과 짤들을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기레기라 너무 욕하지 마시라. 북한이 좋아서 뉴스를 전달하는 게 아니다. 업무라서 그렇다. 현실을 전달해야 하는 게 의무이기도 하고.)
콘텐츠 이용자들은 이제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엄숙함'을 거부한다.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논조는 '극혐'한다. 앞으로 미디어는 더욱 치열하게 취재해야 한다. 독자들을 가르치려 하면 안 된다. 팩트 속에 같이 살아가며 함께 분석해야 한다. 펭수는 이 냉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특종'의 시대는 갔다. 0.01초면 사라질 속보 경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각자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이른바 '가짜 뉴스'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순간의 기사'는 '순간의 먼지'가 되어가고 있다.
독자들은 스토리를 원한다. 억지로 쥐어짜는 스토리가 아니라 팩트에 충실하게 촘촘히 짜여진 스토리를 원한다. 진정한 기획기사와 탐사보도를 원한다.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발로 뛰어야 한다. 그 단순한 진리를 어긴 기자를 향해 독자들은 펭수의 짤로 묻는다. "실성했습니까?"
나는 펭수를 사랑했고, 사랑해 왔고,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쓸 것이다. 펭수는 그걸 나란 기자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나는 인생, 너는 펭생.
사랑해, 펭랑해.
펭하, 펭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