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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의소리 May 08. 2019

눈을 떠 보니 엄마가 대머리였다

아이의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다 

어버이날. 

오늘따라 유난히 발걸음이 무겁다. 

출근하는 발걸음이야 마음만 샤라랄라 빛날 뿐, 매일 가볍지 않은 거야 매한가지지만 

어버이날만 되면 아무리 햇빛 쏟아지는 날이라 해도 마음의 그늘을 걷어내기 어렵다. 


한때 암환자였다. 

2010년 9월 비호지킨 림프종 4기 진단을 받았다. 

둘째 아이 임신 7개월이었다. 

혈액암이 다 그렇듯 원인 불명이었다. 


2011년 11월 16일 서울대병원 병동에서 찍은 셀카. 이로부터 약 한 달 후 둘째아이가 태어났다. 



뱃속의 아이는 건강했다. 

항암제가 몸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과 태동이 겹칠 때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몸에 새겨져 버린 낙인. 


나 때문은 아니었지만

나는 모든 가족들에게 죄를 지었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고 

남편에게 씻지 못할 아픔을 안겼다. 

당시 네 살배기 큰딸은 툭하면 입원 짐을 싸는 내게 "엄마 어디 가냐"고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갑자기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를 안긴 건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고통이었다. 


아이는 항암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좀 넘은 후 

제왕절개로 무사히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내가 열심히 먹은 덕인지,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한 번도 내 아이에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지 아느냐"고 말한 적 없다. 

그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산만한 배를 쓰다듬으면서 뱃속의 아이에게 속삭였다. 


"아픈 건 나고 

너는 건강해. 

내 인생과 너의 인생은 달라.  

넌 무사히 태어날 거야." 


프리지아를 좋아한다. 아름답고 향기롭다. 꽃말은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그 바람이 통했는지 

아들은 무척 장난꾸러기다. 

"우리 엄마는 천하무적 돼지엄마!"라 하면서도 

"우리 반 엄마들 중에 엄마가 제일 뚱뚱해!"라 놀리면서도 

참관수업이나 학예회에 안 오면 삐치고 

늦게 퇴근하면 "회사 사표 내!"하며 울먹인다. 

오늘도 지난해 어버이날처럼 

"기사 마감 따위 다 집어치우고 집으로 날아와!"라고 외칠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알기 전까지 

'출생의 비밀'을 먼저 말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어길 생각이 없다. 

그건 어떤 특별한 강인함에서 우러나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부모라면 나처럼 결정할 것이라 믿는다. 

아이의 인생은 부모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다. 

내 아들은 태어나 보니 엄마가 대머리였을 뿐이다.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가 다 빠져 빡빡머리였을 뿐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나의 아이에게 

신세타령만 하며 주저앉는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아이는 '내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내 감정을 강제로 주입시키면 안 된다. 


201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인생'이란 책의 몇 페이지가 그렇게 넘어갔다. 


아이들에게 

'오늘'을 선물하고 싶다. 

그게 어미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훗날 

"내가 왜 당신의 아이로 태어났을까"라는 절규를 듣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 아닐까. 



오늘

세상 모든 엄마, 아빠들에게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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