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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05. 2022

아직까지도. 불편한. 개인적인 이야기

2020-1



2020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을 회상해본다.


따뜻한 봄날, 설레는 마음으로 교정을 거닐어보겠다는 기대가 무색하나는 1학년 1학기의 절반을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보내야 했다. 모두가 저마다의 혼란을 겪던 그 시기 동안 나도 내가 그 중요하다는 고등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건지, 내가 공부하고 있는 방식이 맞는 건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제한된 환경과 낯선 학업 분위기로 인해 그런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도 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괜히 나의 작은 실패나 실수에도 민감해졌다.

창체 동아리에서 두 번, 자율 동아리에서 한 번 입부를 까이고 나니(이 학교는 동아리도 빡센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야 다) 학교생활의 초장부터 일이 완전히 꼬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탈락한 것에 대한 낭패감과 나의 부족함에 대한 혐오감, 붙은 친구들은 도대체 뭘까 하는 열등감과 패배 의식나를 좀먹어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원래 동아리 지원 때 많이들 운다는 이야기를 2학년 선배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는데,

당시의 나도 나를 몰라주는 것에 대한 그 억울함에 거의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사실 동아리 입부 과정은 국제고에 입학한 후에 당차게 내세운 나의 포부에 반하는, 실패로 인한 상실감을 뼈저리게 겪게 해 준 최초의 경험이었다.


국제고 입학 초기에 나는 욕심이 꽤 많았다. 수시로 대학을 갈 생각이었고, 중학교 때처럼 거기서도

좋은 의미로 확확 튀는 이미지의 학생이 되려 했다. 나는 훨훨 날아다녔던 중학교 생활을 고등학교에서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필요한 게 많았다.

내게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정, 학업능력, 모든 비교과 활동에서의 우수한 성취도, 인성, 명성 등등 내가 원하는 좋은 것들은 일단 다 얻어야 한다는 원인 모를 강박 같은 것이 존재했다.

나의 바람은 일종의 집착이라고도 부를 만한 것이었음에도, 중학교 때는 그 모든 것들이 다 얻어졌기 때문에 내가 심리적인 위축감이 들 이유가 없었다. 러나 그런 상태에서 고등학교로 왔는데 이야기가 달라진 것이었다.


"이게 뭐람?"


그로 인한 총체적인 좌절감에 젖은 내가 스스로에게 줄기차게 되뇌던 이 말버릇 같은 것

지워지지 않는 기억처럼 아직도 입가에서 맴돌고 있다.


동아리 지원 때처럼 되는 일이 없다고 느꼈던 경험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학교에 머물면서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하게 되는 6월, 그 한 달가량 동안 나는 내 인생에서 유례없는 공부량의 기록을 세웠다. 기숙사에서 지내며 오전 8시 전에 신속히 교실에 도착해서 자습하고, 수업을 듣고, 단체 자습을 마친 오후 9시 이후부터 새벽 한 두 시까지 공부했다.


아니,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로..

공부하려 했다.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 결과로 주요 과목인 국영수 5등급이 떴다.

물론 3등급 뜬 과목도 있고 프랑스어 과목은 100점을 맞아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었다. 수시 전형으로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려 했는데 이 정도 내신으론 택도 없었다.


나는 교과 성적 이외의 것들로도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 들보다 기부 내용이라도 좋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발표 시간, 수행평가 시간, 대회에 나간 시간, 기타 잡다한 활동 시간에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 내보였다. 문계 학교에 비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월등히 많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느 한 부분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시도는 다양했지만, 의미 있는 결과로 나온 것은 별로 없었다. 내가 뭘 못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많은 활동에 참여하면서 확 튀는 존재감을 남기지는 못했다. 중학생 때는 이게 됐었는데, 이 학교에 오니 안 되는 게 참 많았다. 이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인정을 받을 정도로 잘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나서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내 마음은 그 모든 일에 대한 결과들을 믿고 싶지 않아 했지만, 어쨌든 결과가 그 모양 그 꼴이 되었으니 원인은 나에게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마 그 부족한 것을 찾는 과정에서부터 내가 나와 우리 가족, 그리고 이미 지나가 버린 내 과거의 삶을 모조리 미워하게 된 계기인 열등감이란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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