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정말 찐-한 질투를 하며 살았다.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서 가장 예민한 부분인 성적 면에서도 그렇고 나보다 잘 사는 친구들이 누린 오만가지 기회에 대해서도 그랬다.
나는 이 학교에서마저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공부를 좀 하는 것 같은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걸 옆에서 듣다 보면, 오늘은 이 학원 내일은 저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푸념이 들릴 때가 있었다. 거기서 늦게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선 늘 안타깝게 생각했지만, 친구들이 그걸로 성적을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르렀을 땐 은근히 질투가 났다. 나는 학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인데! 내게 주어진 환경에 대한 부당함과 아쉬움에 억울한 마음이 드는 순간이었다. 왜 학원에 가면 성적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냐면, 그 학원들에 왠지 '국제고 내신반'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학교 특성상 시험 대비할 만한 기출문제 구하기도 어렵고, 내신시험이 일반 학교랑은 다르니까 그에 따른 대비가 필요했다. 다만 불행히도나는 중딩 때부터 교과서랑 자습서로만 승부를 보던 타입이었어서 이렇다 할 시험 준비 요령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물론 정보가 없는 만큼 내가 더 알아본 것도 아니고, 고등학교에서는 통하지 않는 공부 습관을 형성한 것도 나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의 정보전 싸움에서 지게 됐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그래서 내가 못 가진 돈과 정보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자세히는 말 못 하겠지만 솔직히 내 주위에 잘 살던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서 멋진 부모님들도 뵙고 나니 환경에 대한 열등감이 어느샌가 더 심해져 있었다. 그때는 내게 뭔가가 부족하다는 사실 그 자체마저 원망스럽던 때라 누가 건드리면 열등감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지금은 각자의 가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제각각 다르더란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깨달았기에, 환경에 대한 콤플렉스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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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고는 국제고였는지 친구들이 영어를 다 앵간히 했다. 다 원어민처럼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어를 못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리고 개중엔 영어를 원어민처럼 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이 괜히 미웠는데, 왜냐하면 그 애들이 수업의 수준을 확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내가 그 애들을 미워했던 근거가 터무니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엔 그걸 몰랐다. 나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때의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미숙했던 것 같다ㅋㅋㅋ
당시의 나는 그냥 보통 수준으로 영어를 했다. 그러나 학교가 특수목적고이다 보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학교에서 열심히 해서 그나마 보통 수준의 학생이라도 된 내게 칭찬은 못해줄망정 이 정도는 당연한 거야, 왜 앞으로 더 나아가질 못하니? 라며 잔소리나 했던 내 일기장을 보니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대충 알 것 같다..ㅎㅎ 또한 내가 인정받던 중학교 시절의 오만을 버리지 못한 채였기 때문에 나보다 훨씬 뛰어난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좌절하여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사탕 뺏긴 어린애처럼, 내가 받던 관심을 뺏기고 나니 앞길이 꽉꽉 가로막힌 기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유치해서 기가 찰 노릇이다. 다만 내가 우리의 능력주의, 학벌주의 사회 분위기에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던 것과 세상을 보던 시야가 좁았던 것 등을 생각해보면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영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상황이 한층 더 골 아픈 형태로 내게 찾아온다면 내가 이때와 다른 태도로 상황을 마주하리란 보장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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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고에는 인생을 잘, 그리고 즐기며 살고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 친구들은 공부도 하면서 각자 내세울만한 특기 분야나 장기자랑으로 선보일 수 있는 취미 활동이 있었고 자기 관리도 잘했다. 그런 면들을 보다 보면 괜히 뭔가를 어정쩡하게만 시도하다 끝나는 나의 의지박약이 미워지곤 했다. 그러다 내가 하나라도 내세울 만한 것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도 악기를 배워볼까? 나도 제2외국어 하나 끝장나게 파볼까? 나도 스포츠 하나를 취미로 삼아 볼까? 그러던 중 그나마 자신 있던 것이 노래라서 덜컥 보컬 학원에 다니게 됐었다.
내 주위엔 기회가 있다면 그걸 잡아서 자기 자신을 뽐낼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게 참 부러웠고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 슬퍼서 우울해지곤 했다. 그 친구들이 가진 능력치와 그걸 선보이며 얻은 기분 좋은 추억에 대해서는 지금도 약간 부럽다는 마음이 남아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에서 나도 질투만 하던 그때에 비해선 한층 성장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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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이 글을 구상하기 전에 고교 독서평설 12월 호를 읽다가 인상 깊은 시와 시에 대한 감상평을 읽게 됐다. 이번 주제와 함께 생각해보기 딱 좋은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시이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 지성사, 1989)
'힘없는 책갈피'와 '종이'를 보고 나는 2년 전의 내 심정을 기록해둔 일기장을 떠올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감상평을 쓰신 배수연 님도 이 시를 읽고 자신의 2년 전 일기장을 떠올리셨다고 한다. 밑에 이어지는 문장들을 읽다 보니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그때의 나는 눈물을 머금고 노트북에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내게는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던 것이다. 천천히, 그때의 그 감정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나의 부족을 증오하고, 우리 가족의 무능을 증오하고, 이렇게 부족한 줄도 모른 채 안주한 내 과거의 시간들을 증오한 것은내가'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숙했던 나의 고1 시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다는 서글픈 사실을 오래도록 잊지 않으려 한다. 후에 내가 품게 될 모든 희망이 부디 질투로 얼룩진 것이 아니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