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자랑할 때 눈치 보여요?
A. 그랬는데 이젠 괜찮아요 :)
나는 우리 엄마가 모임에서 내 자랑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 친구인 이모들도 아마 자식 자랑을 하실 거다. 애들이 있는 장소에서 어른들이 대놓고 말씀하시는 건 아니지만, 나중에 집에서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친구에 대한 새로운 정보(그것이 칭찬거리이든 문젯거리이든 간에)가 갱신되어 있다. 높은 확률로 우리네 정보도 이런 식으로 내 친구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나는 친근한 타인들이 '내게 이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에 대해선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내 친구나 내 친구의 부모님께 '내게 이런 특별한 면이 있다'는 사실이 전달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남들 앞에서 스스로를 뽐내거나, 누군가로부터 추켜세워지는 상황을 버거워했다. 여기에는 꽤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첫째로, 자랑할 만한 존재라는 어필이 있어야지만 내 자존감이 충족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둘째로, 실컷 내 자랑을 해놨는데 언젠가 어떠한 실패를 겪어 볼품없는 모습으로 그들 앞에 서게 될까 봐.
셋째로, 그냥 사람들이 나를 재수 없어할까 봐.
자랑을 하면서도 눈치가 보이고 긴장하게 되는 것은 이 모든 이유들이 복잡하게 내 머릿속을 떠다니기 때문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건 단연 두 번째 이유이다. 자랑한 내용과 지금의, 혹은 미래의 내 모습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 경우는 뻔하다. 부모님이 나도 아는 누군가에게 내 자랑을 하실 때.
부모님이 자식 자랑을 하게 되면 자식에겐 일종의 의무가 생긴다. 너에게서 그 자랑거리를 떼어내선 안된다는 의무. 자랑은 부모님이 하는 것이지만, 혹여나 그 자랑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추락하는 것은 부모님의 위상이 아니다. 실패한 자식이다. 내가 실패를 했다는 것도 용납이 안 되지만, 자랑의 여파로 인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까지 신경 쓰이는 상황은 끔찍하다. 나는 그런 점이 몹시 성가시고 불편해서 부모님이 내 자랑을 하시는 걸 정말로 싫어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자랑을 좀 맘 편히 받아들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기 위해 쓴 글이다. 얼마 전에야 깨달은 것이 있다. 자랑을 하고, 자랑했던 나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남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좌절했던 나의 모든 행동들은 단지 나를 남의 시선에 맞춰 바라봤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자랑은 단지 내 멋진 모습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이제까지의 나는 나를 보여주는 자랑이라는 행위에 떳떳하지 못했고, 그 이유는 지금 혹은 나중에 남들이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만을 생각하여 스스로에게 심한 부담감을 안겨 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들기까지 했다.
이제야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든 남의 시선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와닿는다.
사실 엄마가 꽤 많은 지인들에게 자랑하신다고 내 블로그와 브런치 주소를 공유하셨는데, 나 자신이 너무 솔직하게 드러나는 공간을 자랑당한(?) 입장에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엄마한테 짜증도 낼 뻔했다. 그러나 어차피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되라고 만든 공간인데, 내 근처 지인은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같아서 이 마음을 고쳐먹고, 내가 깨달은 바를 이 공간을 빌려 즐겁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