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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24. 2022

마음이 공허했던 고2의 가을

한 5년 지나면 이불킥각?


02

 이른 아침 지하철역 방향의 도보에 바퀴벌레의 시신이 늘어져 있었다. 혐오감이 드는 것도 잠시, 그녀는 곧 자신의 혐오감을 의연함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얼마 전 자취를 시작해 수많은 벌레와의 사투가 예견된 시점에서 저런 벌레 따위에 기가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순간적인 다짐으로 극복해냈다는 것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태도를 곧장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그게 비록 지금처럼 그리 큰 의미가 없고 일회성을 띠는 것이라 해도, 그녀는 그것이 그녀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줄 일종의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처세술이란 것에 대해서는, 그녀도 모든 사람이 으레 생각하듯 남들보단 자신의 시야가 한 단계 더 넓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 노력으로 그녀는 순간적인 대처에는 능숙해 보일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 감정이나 판단이 오락가락하게 될 때도 있었다. 그녀는 무엇이 자신의 솔직한 견해이고, 무엇이 자신의 성취에 유리한 판단인지를 구분해낼 수 없었다.


 불어오는 부드러운 미풍에 그녀의 시선은 하천을 사이에 낀 산책로의 푸른 정경에 머물렀다. 흐리고 비가 내리던 날들의 연속에서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화창한 날씨에 가로수와 누런 갈대, 잉어와 왜가리가 각자만의 기분 좋은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푸른 잎사귀 사이로 햇빛이 골고루 퍼지면 나무는 살랑살랑 몸을 흔들어 그 안의 햇빛이 더욱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게 했다. 나무 밑을 지나고 있는 노인의 형광색 등산복에도 깃든 그 아침 햇살로 인하여 주위의 풍경은 주홍빛의 따스한 인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은 이제부터 시작되는데 그녀는 벌써 하루가 다 저물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그 기분은, 오늘이 지금의 이 순간처럼 평탄하고 고요한 채로 완전히 끝나 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녀는 시간이 바람처럼 뻥 뚫린 채로 흘러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렇기에 그녀는 그녀가 서 있는 하루의 출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매 순간, 모든 일에 열정과 노력을 퍼붓길 선망하고 있으면서 왜 그러한 자신의 삶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가? 어째서 끊임없는 덧없음의 예감이 그녀의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인가? 오래전부터 마음속 어딘가에 깊숙이 파묻혀 있던 묵은 질문이 그 순간, 다시금 머리를 내밀고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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