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꽃 Nov 05. 2021

그녀의 자유가 불편하다

구더기가 무서워도 장은 담아야지.

 아이가 ‘또’ 외박을 예고했다.

며칠 전에는 Y가 치킨을 사준다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며 치킨 먹은 김에 자고 오겠다(?)고 통보했다.

S의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느라 외박한 지 이틀도 안 되었는데 이번에는 치킨을 핑계로 또 외박이라니.

마음은 단호하게 안돼!! 했지만 허락을 해야만 했었다.  

Y가 ‘어머니 허락해주세요. 제가 오늘 너무 외로워서 그래요.’라며 사정을 해오는데,

차마 모질게 ‘그냥 치킨만 먹고 와!!’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친구의 애교 덕에 외박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또 외박을 하겠단다.

이번에는 ‘오래간만에 애들이 뭉쳐서’였다.      


"엄마도 알지? D.H.J 다들 지방 사는 애들이잖아, 언제 또 만날지 몰라서…."

나는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에 날을 잔뜩 세우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이번 주만 벌써 3일째다. 아무리 네가 성인이라도 이렇게 네 마음대로 사는 건 아니지"


며칠 전부터 아이의 외박 때문에 불편해진 마음에 불이 붙었다.


"그럼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지, 누구 마음대로 살아?"

"뭐? 너…."


이번에는 아이가 내 말을 잘랐다.


"나 28살이야. 말없이 외박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뭘 하는지, 꼬박꼬박 이야기 다 해주잖아.

다 큰 어른이 친구들과 놀 자유가 없어?"

"노는걸 뭐라 하는 게 아니고, 외박을 뭐라 하는 거잖아."

"나 엄마가 외박한다고 뭐라 그래?

내가 엄마 며칠씩 여행 가고, 출장 가고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뭐라 그래?

엄마도 엄마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잖아.

나는 엄마한테 아무 소리 안 하는데, 엄만 왜 맨날 나한테 왜 그래?"


아이도 마침내 폭발했다.



 20살까지 외박은커녕 통행금지 8시도 넘기지 않던 아이였다.

‘잠은 무조건 집에서 자야 된다.’는 나의 말에 아이는 단 한 번도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면 안 돼?’라고 물어온 적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탄산음료, 가공식품 등 먹지 말라는 것 먹지 않았고,

짧은 치마, 민소매 등 입지 말라는 옷은 입지 않았다. 화장도 물론 안 되는 말이었다.

‘세상에 이런 아이가?’ 할 정도로 순종적인 아이였고,

나는 ‘세상에 이런 엄마가!!’ 할 정도로 폭군 엄마였다.

그랬던 아이가 스무 살이 넘어서 ‘오늘 친구 집에서 파자마 파티하는데 자고 올 거야’라고 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생애 첫 외박을 하는데 허락이 아닌 통보를 하는 아이의 태도에 나는 분노했다.

당연히 나는 단호하게 안 된다면서 아이를 야단쳤다.

그런데 아이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나 이제 어른이야. 이때까지 엄마 시키는 대로 했지만, 이제는 내가 누려야 할 자유 누리고 싶어."

"누가 들으면 엄마가 널 감금이라도 시키는 줄 알겠다. 그래 누리고 싶은 자유가 기껏 외박할 자유야?"

"아니 친구들과 밤새워 놀 자유! 먹고 싶은 거 먹을 자유!! 입고 싶은 옷 입을 자유!!! 이제는 누릴 거야!!!"


아이의 단호함은 절실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고 살았던 고단함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아이의 표정에서 나는 그제야 그동안 내가 아이를 얼마나  통제했는지를 조금!! 깨닫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아이의 첫 외박을 허락해줬다.

그래. 이때까지 잘 따라와 줬잖아. 나의 불안감을 위안하면서.  

마치 내가 잘 양육해서 아이가 무사히 어른이 되어서 첫 외박을 한 것처럼 착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날 이후, 아이는 자주 외박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결국에는 아이의 논리 정연한 설득을 당할 수가 없었다.

 

"엄마. 이건 억압이야. 나를 그렇게 못 믿겠어? 날 좀 믿어봐."


난 아이가 자유를 선언할 때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아이의 말이 다 맞았기 때문에.

아이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고 친 것 수습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믿어달라는데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오히려 아이를 믿지 못한 나 자신이 겸허하게 반성까지 하게 만드는 설득이었다.

어른의 엄마가 되는 게 처음인 나는 어른이 된 아이를 전적으로 믿어 주기 위해 마음을 다지고 다지고 또 다졌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의 외박 자유가 불편하다.

이제는 아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믿지 못하겠다.

사건·사고 소식을 듣고 볼 때마다 불안하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딸 키운 부모 마음은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아이에게 통하지 않은 핑계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내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


오히려 아이가 용감했다.


"오래간만에 아이들 만났는데, 나 좀 편하게 놀게 해 주면 안 돼? 꼭 초를 쳐야 하겠어?

도대체 뭐가 걱정인데? 누구랑 있는지 사진도 보내주고 그러잖아."


사진 속의 아이는 언제나 즐거워 보였다.

비록, 세상 어느 곳에서 흉흉한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는 저렇게 즐거워하고 행복한데. 왜 나의 마음은 걱정하느라 이렇게 불편한가?

 만약 사진 속에 여자들만 있었다면 마음이 좀 덜 불편했을까?

오래간만에 만난 애들 중에 남자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가?


고백하자면, 맞다!!

난 아이가 나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임신을 할까 봐서 걱정이지만,

이 마음을 정직하게 고백할 수 없어 불편하다.

맞다.라고 인정을 하면 미혼 엄마로 살았던 나의 지난 삶을 나 스스로가 부정하는 것 같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맞다!!  비록 나는 미혼 엄마이지만, 아이만큼은 미혼 엄마가 되는 것을 막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고 내가 내 삶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얻었으니까.

그런데도, 내 아이가, '아이를 위해'  그 길을 선택하겠다고 한다면 솔직히 쉽게 응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내가 부족하고, 모자라고 아이에게 해준 게 없는, 언제나 미안한 엄마이지만, 그래도 엄마이니까.


이튿날, 아이는 톡을 보냈다.


'엄마 미안해. 엄마의 마음 이해하는데, 조금만 다정한 목소리였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

그랬다면 나도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엄마 마음 좀 더 이해했을 건데.’


언제나 이런 식이다. 이번에도 불편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느라 먼저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

말하지 못한 불편함은 두려움이 되고, 그 두려움은 잔소리가 되어서 아이에게 상처를 남기곤 했다.    

불편함의 원인은 어떻게 해결을 할까? 과연 해결이 될 수 있을까?

아이는 진짜 나의 마음을 이해할까? 아이의 자유를 불편해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을까?

언젠가. 딸에게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딸. 엄마가 진짜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말이야....

네가 엄마처럼 미혼 엄마가 되는 것보다, 따뜻한 사람과 따뜻한 가정을 꾸렸으면 좋겠어.

나의 손주만큼은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미혼 엄마로 살았던 걸 후회하는 게 아니야. 네가 있었으니까.

엄마의 선택 때문에 아빠 없는 네가 외로웠을까 너무 미안해서 그렇지.      


그럼 딸은 뭐라고 그럴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제발 마음 불편해하지 말고,

숙취로 속이 불편한 딸을 위해 김치 콩나물이나 끓여주는 게 어때?


맞다. 구더기가 무섭더라도 장은 담궈야 맛있는 된장국도 먹고 떡볶이도 먹을 수 있지.  


작가의 이전글 생활의 영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