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은 되기는 싫고.
오래간만에 만난 지인이 딸에게 천만 원 용돈을 받았다며 은근슬쩍 자랑을 한다.
"진짜요? 와~~ 좋으시겠다." 라며 영혼을 잔뜩 끌어모아 반응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딸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엄마를 위해 여행적금도 넣고, 엄마를 위해 유기농만 구입하고, 엄마를 위해 청담동 마사지 숍 티켓도 끊어주고, 엄마를 위해..... 묻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남의 집 딸 자랑을 듣느라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사실, 처음 하는 자랑질도 아니다. 만날 때마다 한다. 딸 자랑을.
그런데 언제나 새로운 레퍼토리다.
어떻게 만날 때마다 새로운 자랑거리들이 흘러나오는지 화수분이 따로 없다.
(비록 아주 가끔씩 만나기는 하지만)
십여 년 전, 환갑이 넘은 나이에 황혼 이혼을 하고 마흔이 넘은 미혼인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녀에게는 노후의 걱정 따위는 없어 보인다.
딸 자랑이 끝날 때 즈음이면, 으레 나에게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없는지 알아봐 달라고 한다.
하지만 행여 괜찮은 남자가 있어도 소개를 해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저녁에 아이에게 그녀의 딸 이야기를 했다.
엄마에게 잘해주는 남의 집 딸 이야기를 듣다 말고 아이는 나의 말을 면도칼로 자르듯 자르고 물었다.
“그래서 부러워?”
“글쎄... 부러운가?”
흐린 말 끝에 나의 마음이 묻어 있었다.
그래 조금은 부럽더라.
문득 다가올 미래의 아이와 나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일흔이 넘은 나와 마흔이 넘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만약 그때까지도 나와 아이가 둘이 살고 있다면, (상상만으로 마음이 짠하기는 하지만)
아이는 나의 노후를 위해 적금을 넣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의 옷을 사주고, 냉장고 가득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들로 채워놓으면서 알뜰하게 살뜰히 나를 챙길까? 일 년에 한두 번은 그동안 떠나지 못한 여행을 떠날까?
“심봉사 같은 엄마는 되지 않겠다며?”
아이는 나의 상상에 고춧가루를 뿌렸고, 나는 마치 금지된 것을 욕망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랬지. 심봉사 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로, 약속을 했었지.
아이가 어렸을 때 심청전을 읽고 물었다.
“만약에 엄마도 앞을 못 보게 되면, 나도 심청이처럼 팔려가야 되는 거야?"
"아~~~ 니. 걱정 마. 엄마는 앞 잘 보고 다닐 테니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심청이가 팔려갔으니까 왕비도 되고, 심봉사는 눈을 떴잖아.”
"그러니까 팔려가야 되는구나"
아이는 무섭다고 울었다.
젖동냥으로 자신을 키운 눈먼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죽으러 가는 딸의 이야기가 결국에는 해피엔딩이기는 했지만 해피엔딩으로 향하는 그 과정들이 아이에게는 무자비하고 무서웠을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세상에 이런 학대가 어디 있을까도 싶었겠지.
그동안 '효'라는 이념에 갇혀 세상 아름다운 이야기로 여겨졌던 동화가 아이의 시선에서는 잔혹 동화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걱정 마 엄마는 심봉사 같은 엄마 되지 않을 테니까, 너도 심청이 같은 효녀 되지 않아도 돼"
이라며 아이를 달랬다.
"진짜? 그래도 돼? 효녀 안 해도 되는 거지?"
"그럼. 그냥 넌 너의 인생을 행복하게 자알 살면 돼. 그게 최고의 효도야. 효도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나는 진짜 그랬다.
젖동냥으로 고생하며 자신을 키운 아버지의 사랑에 인신 제물로 보답하는 것만이 효도가 아니라고.
"아버지, 전 아버지 곁에서 행복하게 살겠어요." 라고 했어도 충분히 해피엔딩이 되었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보답하는 존재가 아니니까.
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정말, 자기만 행복하게 잘 살까 봐,
나는 독거노인이 되어 있지나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아이가 심청이 같은 효녀가 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왕 남들의 기대대로 살지 않기로 했다면, 청춘의 한 시즌, 배낭 하나 메고 세계여행 정도 떠날 수 있는 자유와 배포를 가졌으면 싶고,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진취적으로 20대를 보냈으면 싶다.
비록 나의 마음은 불안하고, 걱정되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이의 그 도전과 패기를 응원했을 것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연애도 했으면 싶고, 내가 해보지 못한 도전들을 하면서 살았으면 싶다.
나도 그러지 못했으면서. 아니 그러지 못했으니까 아이를 통해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아 있다.
"그거는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이고, 엄마 기준에서 자알 이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서? 나만 행복하게 살면 된다며?"
아이는 나의 바람대로 살 기미가 1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계속 아이를 두고 욕심을 부리고 있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하면서도 위트 있고 자상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면 좋겠고, 평생을 엄마와 단둘이 사느라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만난 가족들과 원 없이 누렸으면 좋겠고, 그 행복한 풍경 속에 나의 자리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
효녀 되라고 하지 말라 했으면서, 아이를 두고 욕망하고 있는 과연 나는 심봉사 같은 엄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