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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Dec 13. 2021

정성은 맛이 없다!!

맛 내기는 MSG에게

아이가 어렸을 적. 

나는 아이의 입이 정말 짧은 줄 알았다. 

한 번 식탁 위에 오른 음식은 두 번 다시 눈길도 주지 않았고, 먹는 것도 딱 새 모이만큼만 먹었다. 

아이가 뭐든 잘 먹어도 혼자서 아이 키우는 고단함을 감당할 수 없는 마당에 까다로운 식성의 입 짧은 아이가 감당이 되지 않았던  나는 매일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는 생으로 먹는 야채와 과일, 우유는 좋아했다.  

밥 대신 오이. 배추. 사과. 토마토. 우유만 먹는 아이 때문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식재료 대신 생식과 과일들만 그득했고, 그러다 보니 나는 요리할 기회를 놓쳐버려 요리를 못하게 된, 속된 말로 요리 고자가 되어 버렸다.... 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이는 입이 짧은 게 아니었고, 내 요리 솜씨가 짧았던 거였다. 

아이는 내가 해주는 음식만 먹지 않았을 뿐,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아이였다. 

덕분에 아이는, 물만 줘도 자라는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잘 자랐다. 

누가 뭘 먹고 이렇게 컸어?라고 물으면 급식 먹고 컸어요!! 할 정도로 급식 잘 나오는 어린이집과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닌 탓에. 

음식 해 먹이는 걸 좋아하는 요리 잘하는 엄마 친구들 덕에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거 먹어가면서.     


학교에서 더 이상 급식을 먹을 수 없게 된 아이는, 식당에서 급식을 먹듯 끼니를 해결했다. 

가끔씩 엄마의 직무를 유기한 것 같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장을 잔뜩 봐가지고 와서 요리를 한다. 

어떤 날은 닭볶음탕도 하고, 어떤 날은 된장국도 끓이고, 어떤 날은 쇠고기 가득 넣은 미역국도 끓이고, 

카레도 하고, 짜장도 하고, 김치찌개와 부대찌개도 한다. 

정성을 가~~~ 득 담아서. 

하지만  나의 정성은 생각만큼 맛을 내지 못했다. 

맛은 고사하고 간이라도 대충 맞춰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미역국에서 행주 냄새가 나." 

"어떻게 카레에서 청국장 냄새가 날 수 있지?" 

"내가 알고 있는 닭볶음탕 맞아?"


아이의 반응은 정직하면서도 잔인했다. 

그래도 나의 정성을 생각해서  맛있게 먹어주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용기를 내어 계속 노력이라도 하겠는데, 아이는 단호했다. 


엄마의 정성은 맛이 없어. 

 

나의 정성은 매번 퇴짜를 맞았다. 

겉으로는 "그래. 세상의 엄마들이 꼭 요리를 잘해야 될 이유가 없잖아." 하면서 쿨 하게 반응했지만, 못내 자존심이 좀 상했고, 한편으로는 많이 미안했다. 

미안함은 엄마 노릇 제대로 하는 게 없구나.라는 자책으로 이어졌고, 자책은 나도 아이의 입에 뭔가를 넣어주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제빵이었다.  

그래 꼭 밥이 아니어도 되잖아!! 빵을 해먹이자!!. 

빵 굽는 엄마라니. 상상만 해도 몽글몽글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이지 못한 죄를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주위에서는 “빵집이 왜 생겼겠냐?" " 밥도 제대로 안 해 먹으면서 무슨 빵이냐.” “정성이 담긴 제빵사의 빵을 사주는 게 훨씬 합리적이다" 등의 말로 만류했지만,  아이만큼은 의외의 반응이었다. 


오~멋진데?  


 그렇게 하여 나는 제빵 학원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빵 만들기에 도전하였다. 

만만치 않은 과정들을 거쳐 마침내 제대로 된 빵을 만들어 아이가 맛있게 먹어줄 것을 상상하면서 집으로 오던 날의 설렘을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데  아이는 내가 만든 빵을 보고 시큰둥했다. 

그래, 그동안 내가 만든 요리에 대한 기억들이 있으니까, 

아이의 편견을 충분히 이해한 나는 아이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어서 먹어봐. 엄마의 정성이야. 이번에는 맛있는 정성이야."  

"엄마. 나 사실 빵 싫어해. 나 단거 되게 싫어하는데... 몰랐구나..."

"어?" 


머릿속으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에 나는 휘청거렸다. 

나의 정성은 눈보라앞에 아무힘도 쓰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세상에 빵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 사람이 나의 아이라는 사실에, 이십 년 동안 내가 그 사실을 몰랐던 사실에...  나는 무릎이 꺾였다. 


"그런데 왜 빵 배운다고 했을 때, 말 안 했어?"

"난 엄마가 당연히 내가 빵 싫어하는 거 알고 있는 줄 알았지."     


나는 더 이상 제빵을 배우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정성은 객기였다.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엄마라고요. 특히 아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제일 신경 쓰고 있지요.' 라는 식의 내 마음 편하고 싶었던 객기.  


       


여전히 나의 요리 실력은 형편없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꽤 많이 좋아졌다. 

꽤 먹을만한 요리도 생겼다. MSG 덕분이다. 

그럼에도 정 간을 맞추기가 어렵다면, 아이에게 맡긴다. 

적어도 자신이 먹을 음식의 간을 맞출 정도로 아이는 자랐다. 

그리고 가끔씩 위로하듯, 격려하듯  이야기한다. 


애쓰지 마. 세상에 널린 게 맛있는 식당이야. 정성은 무슨 정성이야. 

마음 편히 대충 살아. 맛은 MSG에게 맡기고.  

  

어.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정성은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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