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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Dec 04. 2021

네가 물었다.

왜 태어난 인생은 없다. 당연히 태어난 거야.

“날 왜 낳았어?”     


친구를 만나 늦을 것 같다는 다정한 문자를 보낸 지 4시간 만에 술에 취해 들어온 너는,

눈물 글썽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너의 목소리도 눈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문득, 너의 탄생 전야가 떠오른다.

봄이 한창이던 4월의 마지막 날.

예정일이 보름이나 지났는데, 세상에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너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대신,

뭐, 어련히 알아서 태어나겠지 라며 마음을 바꾸어 먹기로 했었지.

그 느긋한 마음을 먹은 지 하루가 지나지 않아 너는 세상에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슬이 묻은 속옷을 빨고, 미리 챙겨두었던 출산 준비물들을 챙기면서 진통 간격을 재고 있던 나는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곧 너를 만난다는 설렘과 그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을 산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더 이상  혼자이지 않은 삶을 선사한 너에게 감사했다.


비록 엄마인 나 말고 너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이가 없다는 것이 미안했지만,

너는 엄마인 나 혼자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해줄 것이라 믿었어.

열 달(하고도 보름) 동안 너와 나는 한 몸이었으니까.


이튿날 통이 막 트기 시작할 즈음.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길.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세상이 있었다.

길가 꽃밭에서 만발한 개망초꽃들이,

막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쪽 하늘의 태양이,

따뜻한 봄기운 잔뜩 머금은 봄날의 아침 바람마저도 너의 탄생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신비했던 날이었어.

제일 신비했던 것은 분만실에 들어간 지 30분 만에 4킬로의 몸무게를 자랑하며 순풍 태어난 너라는 존재였지.      


하루 만에 전날 왔던 길을 너를 안고 돌아오는 길.

하룻밤 사이 꽃을 피운 사과꽃 봉오리들이 나와 너를 반겨 주었다.

비록 출산을 축하하는 꽃다발 하나 받지 못했지만 나는 전혀 부럽지 않았다.

나는 나의 세상을 안았으니까.     


생전, 질문 같은 것을 하지 않던 네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기습 질문을 던졌다.

마치 잇몸 어딘가 숨어있는 사랑니를 툭툭 건드리는 것처럼.


"나 다섯 살 때인가? 통닭집 이 층에 살 때, 날 가두고 어딜 다닌 거야?"


불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제발 네가 기억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말이야. 겨우 5살이었잖아.

그동안 한 번도 말을 하지 않길래 진짜 기억을 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스무 살이 되어서야 너는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 나에게 물었다.

나에게만 꼭꼭 봉인된 상처이기를 바랐는데 말이야.      


미싱공이었던 나의 실수로 공장 전체가 며칠째 잔업. 철야를 했었던 때였다.

당시 한 번의 실수로, 세상의 온갖 치욕과 모욕을 당했던 나는 소송 위기까지 가야 했었다.

같이 일했던 선량한 동료들의 희생과 수고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치러야 했던 대가 지불의 결과는 한동안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엄마가 철야를 해야 했거든..... 미안해... 많이 무서웠지?"

  

구구절절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아이가 더 아파할까 봐 입을 닫았다.      


"그랬구나. 난 또 남자 친구 만나러 가는 줄 알았지."

"야아~설마."

"차라리 남자 친구 만나러 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낭만적이잖아. 좀 비정하더라도 말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더 이상 한 마디도 하지 못했지.

     


"그때 왜 그 인간한테 사과하라고 했어?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난 네가 자퇴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줄 알았지.

네가 담임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는 줄 알지 못했다.

아니, 혹시나 내가 알았다고 한들 그때의 나는 담임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야 네가 무사히 학교에 남아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니까.

네가 담임과의 갈등을 겪는 동안 학교에 불려 가는 게 불편하고 싫었던 나는 무조건 너의 사과를 종용할 수밖에 없었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잘 몰랐으니까.

보이지 않았던 너의 마음. 너의 아픔보다 눈에 보였던 상황과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뒤늦게서야 담임이 고분고분하지 않고, 순종적이지 않은 너를 얼마나 학대했는지,

그 이유가 내가 여느 아이들 엄마들처럼 학교에도 자주 오지 않고 봉투를 찔러주지 않고 학교 발전을 위해 헌신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너를 자퇴시키는 것으로 부조리했던 담임의 만행에 저항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때의 일은 너에게는 상처였겠지.


"그러니까. 엄마가 진짜 뭘 몰랐다니까. 미안. 미안해. 지금 생각해도 열 받네.

그 완전 미친년이 XXXX(삑 처리)"

      

늦었지만 너와 함께 했던 그 인간의 험담이 조금이라도 너에게 위안이 되었길.      


"꼭 중국에 갔어야 했어?"

      

넌 뭐든 알아서 하는 아이였지. 내가 알아서 한다고를 입에 달고 살았잖아.

그래서 입시도 혼자서 잘할 줄 알았지.

오랜 시간이 지나 네가 이렇게 물어올 줄 알았다면 조금은 생각해봤을걸.

아무리 급한 일정이 잡혀 있었다 했었다고 해도 말이야.


"사실 난 엄마가 필요했었어."

"왜 말 안 했어? 네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갔을 텐데."

"꼭 말해야 아나? 보통 엄마들은 그러지 않나? 당연히 입시 앞둔 딸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너는 너에게 흉터로 남을뻔했던 상처를 질문이라는 형식을 을 빌어 나에게 고백했고,

나는 그 질문의 답을 찾느라 외면했던 나의 지난 과오를 직면하고, 사과하면서

그렇게 우리는 성장하고 회복해가는 줄 알았지.

    


그런데, 왜 날 낳았어?라는 너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니, 찾을 수가 없네.

 

시간이 지나면 엄마 노릇이 좀 쉬워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문제는 더 어렵다.

수학의 미적분이야 모르면 포기하면 되고, 수포자로 인생 산다고 해도 크 어려운 일이 없겠지만,

엄마 노릇은 그게 아니었다. 정답이 없는 거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최선의 답을 찾아야 하기에 문제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렵다.  

가끔씩은 답이 있어야 되나? 싶기도 하다.

.     

나는 한동안 울음 가득한 너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싶었다.

나의 대답이 너의 눈물을 닦아 줄 것 같았지.


하지만. 너는 나의 대답을 요구한 게 아니었지?

그냥 아픈 마음 한 자락, 눈물 한 방울 너를 낳은 나에게 주고 싶었던 거지?

그렇게라도 아픔을 나누고 싶었던 거지.      


그래. 나도 답을 찾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알아두렴. 내가 널 낳은 게 아니라는 것을  

네가 신의 가호 아래 너의 의지로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왜? 태어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넌 당연히!! 태어난 거라는 것을.

왜라는 질문에 정답이 아닌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거.

그게 너의 인생이라는 것을.      


그나저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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