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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꽃 Jan 08. 2022

기다린다.

언젠가 너와 함께 손잡고 여행 갈 수 있는 그날을.

“여행을 갔다 올까 해. Y랑 S랑. 2박 3일 정도 속초로. ”     


나는 귀를 의심했다. 확진자 7천 명 나오는 이 시국에?

아니, 아이가 여행을 간다고 해서. 그것도 무려 2박 3일 동안.

 

이십 대 중반을 훌쩍 넘은 아이가 가출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연말을 맞이하여 2박 3일 여행을 간다는 게 그렇게 의아한 일인가?

세상에서 가장 귀찮고 싫은 게 여행인 아이라면 의아한 일이긴 하다.      


가끔 친구들 등쌀에 캠핑이나 가까운 휴양지를 다녀오는 날이면, (그것도 당일치기로)

국토순례라도 한 것 마냥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아이는 '피곤해. 집 밖은 너무 피곤해.'  

라며 침대에 들어가 다음날까지 나오질 않았다.

그런 아이를 보면 젊디 젊은 애가 왜 저러나 싶고,

세상은 이다지도 넓은데 우물 안 개구리로 살려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어쩌겠는가.

저 아이는 타고난 집순이인 엄마를 닮은 딸인 것을.  

 

나도 집 밖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가끔은 어디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이는 '아니. 없어. 그런 적' 하며 단호하다.

좀 더 활동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어떡하겠어. 그렇게 타고났는데.     


여행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아이가 어렸을 때는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 나의 성향을 무시하고 계절마다 산과 바다와 들로 명소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서 소꿉장난하고 책 읽고 그렇게 집에서 놀아주고 싶었지만,

엄마의 성향 때문에 아이를 집 안에서만 데리고 있는 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성향 따위 무시하고 여행을 다녔다.

하지만, 역시나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림같이 얌전하고 손 델 곳이 없을 정도로 순한 아이였지만 집 밖만 나가면 칭얼거렸고, 잠을 자지 못했고, 탈이 났으며 심지어 어느 해 여름 바닷가에서는 아이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어디를 갈 때마다 엄마랑 둘이 왔어? 아빠는?라는 질문은 왜 그렇게 하든지.


즐거울 것도 좋을 것도 없었던 모녀의 여행을 한 두 번 시도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고 성향대로 돌아왔으면 좋았을걸, 나는 좋은 추억이 생길 때까지 아이의 손을 잡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더 이상 나의 손을 잡지 않으려고 했다.



"나 숙소에 있을게 엄마 혼자 갔다 오면  안 될까?"     


큰마음먹고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날.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질풍노도의 10대이기도 했지만,

그해의 제주도는 누가, 어디를 둘러봐도 여행 엽서의 실사판.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여행을 싫어하는 성향 정도 한 번쯤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자연 앞에

아이는 눈을 감았고, 침대 안으로 몸을 숨겼다.

지금 같아서 핸드폰 때문이라고 이해라도 하겠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결국, 우린 대판 싸웠다.


"그러니까 누가 제주도 오재?"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결심했다.

두 번 다시 아이와 여행 따위 오지 않으리라.

그렇게 제주도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상처의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10여 년 동안 아이와 나는 단둘이 어딜 가본 적이 없었다.

중간에  해외여행을 시도한 적은 있긴 있었다.


몇 년 전, 아이의 절친인  Y가 엄마와 동남아 여행을 간다며,

“우리도 한 번 가볼까?”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이게 웬 떡이냐 덥석 잡았다.

그래, 더 이상  제주도가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가 아니어도 되겠구나.

가족 여행하면, 떠올리게 되는 그 유쾌하지 못한 기억에서 벗어나도 되겠구나.

이번 여행은 무조건. 가야 할 것 같아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나라는 베트남 나트란으로 정해졌고,

아이가 하자는 데로 호캉스로 콘셉트를 맞추고 준비를 했는데, 결국 출국 일주일을 앞두고 취소했다.

아이가 스트레스 과민성 위염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선택 장애인 아이가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계획을 세우느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계획을 수정하고 여행사도 수정하고 하다가 결국에는 그 스트레스와 여행의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앓아눕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사실 엄마도 집이 좋아." 하면서 아이를 위로했다.  

그 말에 아이는 정말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난생처음 엄마와 여행을 떠난 Y는 엄마와 이혼할 뻔했다는 후일담을 전해주는 아이의 표정에서 앞으로 여행은 안 갈 거야.라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뒤로 우리는 여행의 '여' 자도 꺼내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었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었다.

무엇보다 함께 여행을 가고 싶은 의지가 없었다.


인스타에 올라온 생판 모르는 가족들의  여행 사진들을 보면, 가끔 부럽긴 하다.

그 부러움 때문에 가끔은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하고, 우린 뭐가 잘못되었나?라는 자책도 가끔 들지만,

가끔 드는 그 부러움. 씁쓸함. 자책을 붙들기엔 사는 게 녹록지 않았다.

만만치 않은 하루하루 감당하며 살다 보니까 뭐 추억이라는 게 여행지에서만 만들어지는

특수 기억장치도 아니라는 것도 알아가게 되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우리도 인스타에 올릴만한 가족 여행 사진 한 장쯤 남길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지금을 사는 게 더 중요했다.

.

그렇게 살다 보니 아이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하루가 지나도록 문자 한 통 보내지 않는다.

'기집애 사진 한 장 보내주지. 얼마나 재미있으면...'라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 전,

내가 먼저 사진 보내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 깜빡했네. 잠시만.이라는 아이의 문자에서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아이는 지금 즐겁구나. 엄마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을 즐기고 있구나.


사진 속의 아이를 보니, 더 늦기 전에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기다릴 생각이다. 서두르지 않고.

여행 준비로 스트레스 위염 따위 걸리지 않을 만큼 아이의 마음이 단단해질 때까지.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다 인정하고 용납될 정도로 나의 마음이 넓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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