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들의 외침
싱글 괴롭힘
어느 날 보게 된 TV 프로그램 ‘비디오스타’에서는, 그날따라 원래 진행자인 네 명의 여성을 게스트 자리에 앉히고, 임시로 임명된 남자 진행자들이 그들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네 명의 여성이 모두 미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연애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싱글을 가장 괴롭히는 건 주변 사람들의 참견이다. 결혼을 왜 안 하고 있냐, 늦으면 애를 못 낳는다, 눈높이를 낮춰라 등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질문이나 지적질에 대해 진저리를 친다.
과거에는 직장에서 만나는 상급자 또는 연장자들이 미혼의 직원들에게 “이제 결혼해야지”라고 말하거나 “애인 없어?”라고 묻는 게 흔했다. “결혼을 안 하겠다”고 답하면 “왜 결혼 안 해?”라고 묻거나 “결혼을 해야 안정된 생활을 하지”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거야”라는 식의 설교가 뒤따랐다. 지금은 이런 말을 하면 성희롱이나 직장 내 힘에 의한 괴롭힘이라고 인식되는 정도로 바뀌어서 많이들 조심하는 모양이지만, 동성 간, 동료 간에는 아직도 흔하디 흔한 멘트이다.
나이 든 싱글들이 가장 많이 받는 누명(?)은, ‘성격이 독특하다’이다. 그 말은 ‘괴팍하다, 이기적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예민하다’ 등 대부분 부정적인 속뜻을 지니고 있다. 기혼자들도 흔히 하는 언행이나 실수에도, 때로는 정당한 항변에도, ‘그러니까 결혼을 못했지’하는 단순한 문장으로 결론이 나곤 한다.
마흔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은 이들을 향해 “뭔가 결함이 있다”는 식으로 근거 없는 낙인을 찍는 경우가 많다. 결혼 여부로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놓곤 말하진 않더라도 마음속으론 상대방이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로 성공과 실패를 나누곤 한다.
내가 아는 후배는, 혼자라서 힘든 건 별로 없는데, 사람들의 ‘비정상’ ‘결핍’ ‘한심’이라는 낙인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왜 그리 남의 연애사와 결혼 여부에 관심이 많은지 정말 이민 가고 싶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바쁜 직장일 가운데 여유롭게 혼자 보내는 시간도 이해받지 못할 때가 있다. 가끔 ‘왜 점심 먹고 꼭 혼자 시간을 보내니?’ ‘혼자 노는 게 그렇게 재밌니?’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명절 때 잔소리하려면 돈을 내셔야
특히 싱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때가 명절이다. 명절 때 듣기 싫은 말 1순위로, ‘나이 찼는데, 언제 결혼할 거니?’라는 말이라고 한다.
하긴 뭐 명절을 부담스러워하는 게 싱글들뿐이랴? 공부 잘하냐는 말을 듣는 학생들도, 취직 언제 하냐는 말을 듣는 취준생들도, 연봉 얼마냐 묻고 집을 빨리 사야지 운운하는 걸 들어야 하는 직장인들도, 자식 자랑에 돈 자랑을 들어주어야 하는 어르신들도, 엄청난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치워야 하는 노동 속에 내몰리는 여성들도 모두 명절을 싫어한다. 그 명절은 도대체 왜 있는 건지?
어쨌든 평소에는 서로 관심도 없고 영향도 주고받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하던 친인척들이 모여들어서는 싱글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충고질을 일삼는다.
급기야 명절 때 결혼 여부 등 사생활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에게도 벌금이 생겼다.
인터넷에 떠도는 요금은 다음과 같다.
취직 잔소리 5만 원~ 다이어트 잔소리 10만 원~
결혼 잔소리 20만 원~ 종합 잔소리 30만 원~
이처럼 결혼 잔소리는 매우 엄중한 잘못으로 취급되고 있다.
어떤 이는 익살스럽게 <명절 잔소리 메뉴판>을 작성해서 유포시키기도 한다.
모의고사는 몇 등급 나오니 5만 원. 대학은 어디 어디 넣을 거니 5만 원
애인 있니? 연애해야지 10만 원. 살 좀 빼라. 관리해야지 10만 원
졸업은 언제 할 생각이니 15만 원 취직은 어떻게 돼 가니 15만 원
월급은 얼마나 받니 20만 원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니 20만 원
나이 찼는데 결혼해야지 30만 원 애는 언제 낳을 거니/ 둘째 낳아야지 50만 원
메뉴판 하단에는 ‘저에 대한 걱정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사오니 구입 후에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유의사항까지 적혀 있다.
앞서 말한 프로그램의 진행자 중 하나인 김숙이 명절에 결혼 참견을 하는 친인척들의 입을 막을 멘트를 소개했다. ‘결혼 언제 할 거야?’ ‘왜 안 하고 그러고 있니?’라는 질문에는 ‘언니처럼 살까 봐 못 하겠어.’라고 하면 된단다. 세다~
싱글도 충분히 행복해
김숙은 또 말하기를, ‘남자 만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 만나는 게 훨씬 재밌다. 왜 결혼을 꼭 해야 되나’라고 묻는다. ‘연애 안 해도 충분히 행복한데, 결혼을 안 한 사람을 마치 모자라는 사람 취급하는 게 너무 싫다’고 한다.
다른 진행자 박소현도, 박나래를 비롯한 평소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언행이 너무 재밌어서 자다가도 떠올리며 웃는다고 한다. 그녀는 심지어 자기가 박나래 때문에 결혼을 못한다고 핑계 아닌 핑계를 댔는데, 그 이유인즉슨, 남자를 소개받아서 만나보면 너무 재미가 없다는 거다. 지금 생활이 재미있고 좋은데, 꼭 남자와 데이트를 해야만 하는 건가라고 묻는다.
그날의 임시 진행자의 하나인 한 이혼남도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며, ‘나는 좋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보기엔 안 됐다고 그래서....’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10명 중 7명. 홀로족들 중에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 생각이 있다는 비율이다. (2017 KB경영연구소 보고서)
싱글들이 행복을 느낄 때는 기혼자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또는 존재(동물 또는 사물)와 함께 할 때였다. 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과 교류할 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하고 취미가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누구라도 그런 것처럼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취미 욕구를 채워 봤자 가족의 존재만큼 오래가겠냐는 반박도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오래갔는지 기억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지?
행복의 정의도, 행복을 느끼는 시간의 길이도 다 개개인이 정할 일이다.
싱글이 행복할 리가
문제는, 솔로들이 아무리 행복하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거다. 네가 사랑하는 짝도 못 만났는데, 사랑스러운 가족도 만들지 못했는데 행복할 리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좋겠지만 늙어서 외롭다. 고독사 하면 어쩌니’ 운운하는 쓴소리들은 걱정과 격려라는 말로 포장된다.
싱글이 삶을 즐긴다는 말은 좀처럼 믿지 않는다. ‘그래도 너는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는 거지?’라는 시선은 집요하다. 혼자 사는 이가 행복하다고 하면 ‘그런 척하는 게 더 불쌍하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어쩌라고? 싱글은 우울해도 청승, 행복해도 위선 취급이라니!
벨라 드 파울로는 그의 책 <싱글리즘>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당신이 싱글이라고 밝히는 순간, 상대방은 당신이 비참하고 외로우며 커플을 부러워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커플이 되는 건 줄 안다. 일정 연령 이상이라면 당신이 진지한 연인관계를 맺는데 공포심을 느끼고 있거나 너무 까다롭거나 혹은 약점이 있어서 아직 혼자일 거라고 단정한다.”고 했다.
'행복한' 싱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같은 책에서 반론을 펴는데, 결혼이 사람들의 건강, 수명, 행복지수를 특별히 높여 주지 못한다는 통계적 증거들과 경험들을 제시하고, 또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싱글에 대한 문제점이 과장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내가 알아서 할게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틈만 나면 그들의 이혼 경력을 들먹이며 놀려대는 동료들 때문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프로그램 특성상 웃음을 주기 위해서 그러는 모양이지만 계속 당하는 그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이혼도 힘들었을 텐데, 그게 무슨 죄라고...
싱글들이 외친다.
'내 인생 책임져주지도 못할 거면서, 웬 참견?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내가 알아서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