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장꾸 Dec 03. 2021

기차

사진 그리고 단상

밤새 사라진 에어팟을 찾다 집에서 늦게 나왔다. 10 3 기차를 타야 하는데 나온 시간은 9 40.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걸어서 대략 20. 빨리 걸으면 되겠거니 싶어 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아뿔싸, 마음이 급했는지 항상 다니던 길을 잘못 들었다. 지도 앱을 켠다. 기차가 출발하기까지 15분가량 남았는데 도착 소요 시간은 20분이나 남았다. 큰일이다. 서울 가는 기차는   놓치면 출혈이 너무 크다. 종종걸음은  경보로 바뀌고, 경보는  달리기로 바뀐다. 한참을 빨리 걷고 달리다 보니 땀이 난다. 중간중간 지도 앱을 켜고 남은 시간을 확인한다.


어느 순간 도착 소요 시간이 기차 출발 시간보다 빨라졌다. 다행이다. 그래도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기차 출발 시간 7분 전, 목포역이 눈앞에 보인다. 기차 출발 시간 4분 전, 플랫폼에 도착해 숨을 고르고 기차에 타기 전 땀을 조금 식힌다. 급하게 걷고 달리느라 미처 보지 못한 풀린 신발 끈을 꽉 묶는다. 시간 맞춰 좌석에 앉는다. 땀이 한껏 났지만, 그것보다는 기차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이 과정이 내 인생과 비슷하다. 하고 싶은 건 찾았지만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8개월 차 백수라 모아둔 돈을 다 써간다.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여유롭게 찾다가 제대로 뛰어들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이제부터는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달렸던 것처럼 바쁜 일상을 살아야 한다. 땀을 한껏 흘리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년 이맘때 즈음에는 기차를 놓치지 않고 자리에 잘 앉아있는 내 모습을 보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