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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장꾸 Jan 10. 2022

값싼 고독

사진 그리고 단상


"책 같은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야. 원래 그 자리는 고독의 자리였어. 혼자 존재하는 자리.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고독은 흔했지만, 지금은 디지털 기기에 밀려 일상에서 고독이 사라지면서 고독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어. 21세기에 우리에게 허용된 고독의 공간이란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래킹 루트, 혹은 코타키나발루 고급 리조트의 모래사장 같은 곳이지. 관광산업이 정교하게 관리하는 이 고독을 경험하려면 몇 달 월급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이야. 시간이 지날수록 고독의 가치는 점점 더 커질 거야."


"값싸게 즐길 수 있는 고독도 많지 않나요?"


"예를 들면?"




위의 글은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나오는 문단이다. 소설 속에서 윤경은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는 비싼 값을 치러야만 고독이 허용된다고 말한다. 고독 사전적 의미는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외롭고 쓸쓸함? 결코 긍정적이지 않은 이 두 단어를 내포하고 있는 고독을 사람들은 왜 필요로 할까?


나는  이유를  자신을 알기 위해서, 타인이 아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환경일  편안함을 느끼는지, 함께할  진심으로 즐거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우리는 조금  행복하지 않나? 온라인에서건 오프라인에서건 언제나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는 요즘 시대에 나를 알기 위한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고독이 필요한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값싸게 즐길  있는 고독이 뭐가 있느냐는 윤경의 질문에 나는 내게 허용된 고독은 명상 달리기라고 대답할  있다. 명상과 달리기는 완전히 반대의 이미지지만, 하는 동안에는 자신을 온전히 관찰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용히 앉아 명상을 하면서는 내면을 깊게 들여다보고, 힘차게 달리기를 하면서는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몸을 세세히 들여다볼  있으니까. 다르게 이야기하면 명상과 달리기를 하는 동안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고독한 시간을 만든다.


명상과 달리기를 매일 실천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고독을 즐기기 위한 나만의 수단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윤경이 말한 것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까). 이 수단을 알아내는데 꽤 오랜 시간은 들었지만, 그 덕에 나는 나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고 앞으로 더 알아갈 수 있겠지. 내 주변 사람들 모두가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각자의 수단을 하나씩 가지고 있기를,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보다 자신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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