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 회고록 10
블로그를 하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현재 일에 대한 기록이 남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비슷한 성향의 블로거들과 온라인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J는 영어 외에도 호기심이 생기는 여러가지 일들을 꾸준히 기록해 나갔고 비슷한 성향의 블로거 엄마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블로그만 하던 그녀는 어느날 팟캐스트의 매력을 느끼고, 친해진 엄마 블로거들을 시작으로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인터뷰하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방송이 점점 쌓여가자 이런건 어떻게 하는거냐며 문의도 늘어났다. 자신감이 생긴 그녀는 강의를 열고, 전자책으로 내용을 정리해서 판매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일들을 혼자 하라고 하면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야 워낙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그렇지 온라인에서는 온갖 오지랖을 떨며 말도 많은 그녀였다. 그녀와 친한 블로거들은 다들 자신만의 재능을 내세워 강의도 하고, 책도 내는 팔방미인들이었다. 그런 환경에 있다보니 J 역시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썼던 전차책을 한 출판사에 투고해 보았다. 이미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책을 냈던 곳이라 믿음도 가고, 더 부담없이 내봤던 것도 사실이다. 아무 기대없이 깔깔 웃으며 보냈던 그 다음날,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보내준 전자책은 잘 봤으며, 팟캐스트도 좋긴 한데 다른 방향으로 좀 틀어서 책을 내보자는 것이었다.
놀란 그녀는 마음을 진정 시키고, 거듭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날 대략적인 목차를 보내고 그 다음주에는 계약서에 사인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신중하게 결정했어도 좋았을텐데 그저 나도 저자가 된다는 마음에 의욕만 앞섰던 것 같다. 그렇게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본격적으로 초고를 쓰게 되자 금세 후회가 밀려왔다. 대부분 변명이라 부끄럽지만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기록해 본다.
잘 아는 내용이었지만 처음부터 쓰려던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그리고 '남들보다는 잘 써야 한다'는 그녀만의 높은 기준점도 문제였다. 또 매일 짧은 글만 쓰던 그녀에게 긴 호흡을 유기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글을 쓰는 것도 고역이었다. 어찌어찌 초고를 완성해 봤지만 양은 턱없이 모자르고, 내용은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보내보고 수정 할까도 싶었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일단'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계약을 없던 일로 돌려놓았다. 초고를 쓰는 동안 저도 책을 내요 하면서 SNS에 자랑을 했던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했다. 초고를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말 힘든 과정이며 과거에 글을 쓰는 직업이었다고 모두가 잘 넘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후로 J는 더욱 '작가'와 '글'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듯 피해다니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한 회고록은 뭐란 말인가? 그건 그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상한 양가 감정이 드는 행위이다. J는 지금 글이 좋으면서도 싫고, 부담이 되면서도 자꾸 건드려보고 싶고, 언젠가 올라야 하는 험난한 등산 코스 같다. 용기 내서 한발자국씩 내딛다 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휴 올라가려면 힘들텐데 하면서 입구에서 망설이는 느낌이랄까? 그동안 쓴 10개의 글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내 마음 깊은 곳의 감정을 끄집어 냈다는 점에서 후련한 마음이 든다. 올라가다 힘들면 쉬었다 가도 되니까, 기왕 시작한거 꾸준히 올라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