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일라씨 Apr 20. 2022

정확해서 슬픈 괴리감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괴이한 갭

오늘도 다를것 없는 하루였다. 충격 좀 받은걸 빼놓고는. 요즘 유튜브를 재미삼아 올리고 있는데 당당하게 얼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기본 카메라로는 도저히 안될것 같아서 어플을 사용해 조금은 뽀샤시 하고, 조금은 더 눈도 커보이고, 얼굴도 슬쩍(아니 대놓고) 작게 만들어 올리는 중이었다. 뭐 미모로 밀어붙이는 채널은 절대 아니었지만 내 스스로의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어플로만 찍을 수는 없는거고 오늘은 그냥 한 번 찍어보자 해서 카메라를 돌린 것이 화근이었다. 우리집은 안 예쁘니까 운영중인 스튜디오 청소하러 간 김에, 자연광도 예쁘지만 룸에 있는 조명도 한껏 다 켜고, 얼굴 바로 옆에 LED 조명까지 켰더랬다. 혼자 하는 촬영인지라 허둥지둥 어렵게 각도를 맞추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조잘조잘 떠드는건 얼굴보다 자신이 있었기에 한참을 떠들고 셀프로 컷-. 그리고 결과물을 봤는데 세상에 세상에.



'얼굴이 너무 이상해!'



뷰티 어플을 거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나는 43살 아줌마의 얼굴 그대로였다. 물론 관리하는 43살은 다르겠지만 나같이 운동도 안하고 식단도 안하고 밤마다 야식과 맥주를 즐기는 아줌마는 예쁜 얼굴이 나올리가 없었다. 오늘따라 촬영한다고 화장도 더 열심히 했지만 별로 소용 없었다. 신나게 떠드는 영상 속 아줌마는 얼굴까지 살짝 들고 있어서 앵글이 더 이상했다.



'좀 환하게 보정하면 괜찮지 않을까?'



혹시나 하고 편집 앱을 켜서 톤을 올려보았다. 하지만 별로 변화는 없었다. 그동안 마셔댔던 맥주가, 닭발이, 오돌뼈가, 곱창이 얼굴에 나 이거 평소에 진짜 많이 먹는다고 써있는 느낌.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럼 이게 내 평소의 얼굴인데 뭘 그리 꾸미려고 하는지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정확해서 슬픈, 어플 속 내 얼굴과 그냥 기본 카메라의 내 얼굴 사이의 괴리감. SNS 하면서 보정 안하는 사람 없다고 해도 이럴때 현타가 오는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기준에 맞춰  얼굴을 바꿀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 시선 이전에 내가  모습이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결국 들어가는 길에 샐러드를 하나 고이 포장했다. 식단 조절을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것 같았다. 알고 보니 샐러드 밑에 밥이 깔려있었지만 전혀 고민하지 않고 맛있게  알도 안남기고 싹싹 긁어먹었다. 탄수화물이 더해지자 비로소 너무 만족스러운  끼가 되었다. '포기하면 편해..'.라는 슬램덩크의 명대사를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아아. 마음이 훨씬 편하긴 한데 슬픈  어쩔 수가 없다. 무엇이든 남들이 부러워하는 면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기 위해 보이지 피땀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이 찐하게 다가온다. 예쁘고 날씬한 당신들, 타고난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존경스럽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드 덕후인게 다 이유가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