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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록소록 Jul 16. 2021

글 마감이 안된다는 핑계로 글쓰기

끄적여 둔 단상은 쌓이는데, 정작 글을 다듬어 업로드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단상들을 급한 대로 메모장, 브런치 작가의 서랍 등에 흩뿌리듯 휘갈겨둔다. 보통은 그날그날 할 일들에 치여 각 잡고 글을 정돈할 겨를이 없다. 혹은 일 없이 쉬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체력이 방전 상태라 엉덩이를 붙이고 집중력을 발휘해 글을 다듬을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 핑계다) '정리해서 올려야 하는데...' 혹은 '정리해서 완성 지어야 하는데...' 하는 부채감은 필수 옵션으로 따라온다.


팝업형 사고는 이럴 때 참 골치가 아프다. 밤낮 가리지 않고 예고 없이 찾아오시는 영감님(불현듯 드는 생각이나 글감을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 때문에 새벽잠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적도 많았으되, 산책을 하다가 우두커니 멈춰 서서 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 내려간 적도 있다. 가장 곤란할 때는 씻는 중에 찾아오실 때다. 물기 때문에 타자를 치기가 어렵다. 포스트잇이랑 펜이라도 화장실에 둬야 하나. 씻는 동안 생각은 맴돌거나 확장되거나 잊혀진다. 되도록 남겨두려 하지만 날아간 단상들도 꽤나 많다. 놓치면 잊혀질 것을 알기에 한동안 부지런히 적어보려 노력도 했었다. 오늘도 씻다가 떠오른 생각에 이렇게 노트북을 붙잡고 앉아있다.


낙서나 일기 따위의 아주 쓸데없고 시답잖은 글이라 하더라도, 글을 쓰는 시간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과 지금까지 해온 일들 중 가장 몰입도 있는 시간이다. 한번 꽂혀서 쓰기 시작하면(다시 말하지만 거창한 글은 전혀 아니다) 몇 시간을 그으-냥 순삭 당하는 그런 시간. 엉덩이 가볍고 주변 자극에 주의가 빠르게 전환되는 사람인 내가 주위를 거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들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 시간이 아주 빈번하게 찾아오지는 않는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주변 자극을 잘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만 보는 편이다, 글과 대화 두 가지에서 가장 몰입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노트북 키보드를 매개로 주절거리고, 정리하고, 재배치하고, 다듬다 보면 상당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뺏기는 경험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인풋에 대해 아웃풋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지는 않으므로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도 그나마 마음에 차는 글을 내놓기는 참 어렵다. 다시 읽을 때마다 왜 자꾸 덧붙이고 싶은 말들이 생겨나고 고치고 싶은 부분이 수두룩 빽빽인지. 첨삭과 편집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러니 완성된 글 한 편이 빨리빨리 나오질 않는다. 이 끝없는 집착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일종의 완벽주의일까?


위키백과를 참고하니 '완벽주의 :  이루기를 원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보다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 자신을 향해 높은 기준을 설정하여 보다 높은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것을 중심으로 질서와 정돈을 원하는 성향으로 정의.' 로 정리되어 있으나, 내 경우는 교육학용어사전에 정리된 '완벽주의 :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비난이나 비평을 면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 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야기가 길었는데 아무튼 글을 쓰는 일이 상당한 집중력과 정신적 에너지를 요하는 일인 데다 시간도 충분히 들여야 마음에 드는 글을 업로드할 용기가 겨우 생길까 말까 한다는 그런 얘기다. 그래서 이렇게 글이 안 써진다, 글을 완결하기가 어렵다는 주제로 다시 글을 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한다. 결국 남겨둔 것에서 추려질 거라면 많이 남겨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을 써낼 가능성도 올라갈 것이다. 남겨둔 것이 확장되어 하나의 글이 될 것이므로. 떠오른 것들을 그때 그 시점에 끄적여 둘 것이고 그중 마음이 가고 확장시켜 볼 여지가 있는 것들을 차츰 다듬어나갈 것이다. 그것들이 결국 완성본으로서 남을 것이다. 그렇게 마무리 지은 완성본을 또 어딘가에 업로드하고 선보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팝업처럼 떠오르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잘 다듬어 모셔두자. 그 시간과 기록들이 헛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스스로 다짐하고 싶다. 더 좋은 글을 쓰려면 조금 더 생활과 글쓰기를 가깝게 붙여두자. 대신 조금 더 부지런히 첨삭하고 집착은 내려놓자. 일상화된 글쓰기가 결국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스스로의 모습과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에 가까워지도록 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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