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록소록 Apr 28. 2024

더 깊이, 더 넓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좋다고 느끼는 몇몇 순간들 중 하나는, 어떤 매개를 통해 특정 감정을 더 세밀하게 느끼거나 어떤 서사를 풍부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책을 읽다가 주인공의 특정 감정에 깊이 이입하거나 노래를 듣다가 가사의 구체적인 서사가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들을 말한다.


흔히들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달라지고 통찰력이 생긴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나이'만' 먹는다고 다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약 5년 전, 매우 좋아한 노래가 있었다.

모 밴드가 원곡을 편곡하여 선보인 노래였는데, 그 곡이 너무 좋아 몇 번을 다시 듣고 원곡도 찾아 듣게 만들었다. 한동안 그 노래를 끼고 살면서 흥얼대곤 했는데, 당시 보컬이 주는 청량함과 그 곡에 매력적으로 배치된 악기들의 등장을 온전히 느끼면서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노래를 매번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은 주로 '와 어떻게 이런 표현이랑 편곡 구성이 가능했지?', '가사가 그리는 배경을 눈에 보이는 것 같이 멜로디를 너무 잘 만들었다!'와 같은, 곡이 주는 느낌과 보컬의 음색, 매력 있는 악기구성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리고 그 곡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점점 곡 수가 늘어가는 플레이리스트에서 종종 찾아 듣는, 감흥이 조금쯤 줄어든 그런 노래가 되어갔다.

 

그러다 오랜만에 그 곡을 선보였던 무대 영상을 보게 되었다. 다시 보게 된 무대, 노래, 연주는 여전히 처음 내게 신선한 충격을 줬던 그대로 훌륭했다. 그동안의 세월 속 달라진 것은 나뿐인 듯했다.


가사는 유년시절의 풍경과 추억을 눈에 보이는 듯 그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동안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서 잊고 지냈던 유년시절, 그리고 다시는 찾을 수 없는 그 나이 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치솟았다. 화자가 어른이 된 상태로 추억하는 유년시절에 대한 가사가 더 깊고 풍부하게 다가왔고, 그 그리움이 배가 되어 와닿았다. 처음 그 노래를 접했을 때만 해도, '어른이 된 화자가 어린 시절 형과 동네 친구들과 함께 언덕에서 있었던 추억을 되새기고 있구나' 하며 표면적으로만 인지했었는데, 다시 듣게 된 노래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기억 저 편에 밀어두었다고 생각한 어린시절에 추억과 그리움이 마음 어딘가에 고이 숨어있었다.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 내고 지금의 관계 속 복잡 미묘한 순간들을 살아내느라 잊었다고 믿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음악이 다시금 '불러오기' 하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어떤 향이, 특정 시점의 노래가, 당시의 글귀 한 줄이, 잊었던 귀중한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 떠올려진 것들은 메마른 생활에서의 윤기가 된다.


순간순간 감각과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을 많이 갖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 순간들이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 지 알고 있고, 삶이란 긴 여정을 더 풍부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더욱 다채롭고 풍성하게 살아갈 날들을 기대하며, 창가로 들어오는 볕의 따스함에 집중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복잡한 세상, 단순하게 살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