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 중 하나는 직업적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분명 밥벌이, 즉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 또는 생업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직업을 통해 많은 성취를 이루고 그 성과들을 기반으로 성공을 이루어 내며, 또 자신과 동일시할 정도로 강하게 몰입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취하는 경험과 성장, 역할과 책임 그리고 그에 따라 책정된 보수. 그로 인해 삶을 꾸려나가는 것. 직업에서의 정체성과 자아를 동일시하든 분리되어 있든 둘의 연계성은 유기적이다. 그래서 직업 또는 직업에서의 정체성이 한 사람의 삶과 자아를 구성하는 큰 부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직장을 단순한 밥벌이, 생계의 수단으로 여긴다고 해서 이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먹고살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어 충실히 임하는 사람들의 그 모든 노동을 나는 존경한다. 각자의 상황과 사정은 제 각각 너무나도 다르기에, 범법이 아닌 다음에야 그 어떤 방법으로든 홀로 자신을 먹여 살리는 모든 사람들을 대단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자신을 스스로 먹여 살리기 위한 활동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 중 큰 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는 류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립하는 삶에 대해 가장 큰 고민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자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들은 말이기에 폐부를 찌르는 듯한 감정을 느낀 것이다(그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 서 있는 위치와 발밑을 여실히 확인하게 된 여러 순간들 중 한 순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시간 시험에 매달렸다. 처음 시험을 준비하던 때에는 그 시험의 결과가 나를 안정적인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막연했던 그 감정에 믿음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막연한 믿음 비슷한 어떤 것이 분명 있었다. 합격이라는 열쇠가 하나의 관문을 열면 탄탄대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포장된 도로 정도는 가늘고 길게 유지시켜줄 것이라는 믿음. 적어도 해직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는 믿음. 어렸고, 순진했고, 미련했다.
1년을 쏟아부어야 한번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시험을 여러 해 준비하며 고갈되는 것은 건강과 체력뿐만이 아니었다. 자기 확신, 자존감, 평온한 감정과 건강한 정신. 많은 것들이 낡아지고 닳아 없어졌다. 새로이 곁에 자리 잡은 것들은 불안, 공포, 신경성 증상들이었다.
그리고 한 차례의 큰 폭풍이 지나고 내려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험을 내려놓았다. 쉽지 않았다.
시험을 접고 나니 또 다른 시험의 연속이었다. 정면 사진 하나와 보잘것없는 경력뿐인 종이 한 장으로 수없이 평가대에 올랐다. 어느 날은 서류에서, 어느 날은 면접에서 줄줄이 탈락을 경험했다.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예고 없이 날아드는 불합격 통보에 공격을 당한 밤이면 명치 어딘가부터 울컥울컥 올라오는 회의감과 왠지 모르는 억울함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기도,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한 차례 썰물 같은 원서접수 시기의 끝물 무렵, 부지런히 돌렸던 서류 덕이었을까. 서류 탈락을 겪었던 한 곳에서 초단기 알바 개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냐는 연락이 왔고, 며칠 후면 끝날 일을 하고 있다.
벌이 비슷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아마 잠시뿐일 것이다. 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금세 초조해하거나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아니, 금방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다. 고용의 불안이란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것조차도 주제넘는다고 여겨질 만큼 짧은 기간 고용되었다가 계약이 종료된다. 앞으로는 또 뭘 어떻게 해야 하나.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한 사람을 독립적인 개체로 완성시켜주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공백 혹은 결여가 존재한다는 것은 사람을 크게 휘청이게 한다. 중심을 잡고 설 수 있게 해주는 심지에 큰 구멍이 나버린 것처럼 꺾이기 쉽고 불안정하다. 무엇보다 독립적인 성인으로서의 제 기능을 어렵게 한다.
그래도 추후에 미치는 영향이 미약할지 효과적일지 알 수 없는 이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보기로 했다. 우연한 기회로 적을 두었으니 또 다른 긴박한 상황에 연락을 줄 수도 있지 않겠나 하는 작은 희망도 가져본다. 또한 고민과 걱정이 끼어들 수 없도록 부지런히 정보를 주워 담고 탐색하고 공부해가며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 모든 것을 위해 언제든지 일할 수 있도록 건강한 신체를 잘 유지해 나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니 건강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비로소 뚜렷하게 자각한 스스로의 결여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제는 두렵고 불안하다고 해서 이 큰 구멍을 그대로 껴안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