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만난 중국 아줌마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레파토리다.
"본국(중국)에 두고 온 아이들이 있다. 프랑스에는 돈을 벌러 왔다. 여행비자로 와서 프랑스에 있을 수 있는 기간이 3달 밖에 안됐다. 그 안에 급히 프랑스 남자와 결혼해서 결혼비자 받아야 했다. 소개를 받아 나이 많은 프랑스 할배(보통은 20살 정도 차이남)를 만났고 임신을 했다. 동반자 비자를 받았다. (프랑스할배도 워낙 영악해서 쉽게 결혼 안해준다. 여기는 애를 낳아도 결혼 안해준다. 보통은 할배가 70 넘고 죽을 때 다 되서 간병인이 필요할 때 결혼을 해준다.) 그런데 이 프랑스 할방탱이가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 본국에 있는 애한테도 돈을 보내줘야 하고, 지금 낳은 이 아이도 키워야 하는데... 이 망할놈의 할방탱이.... 이러이러해서 나는 돈을 벌러 가야 하고... 구차한 내 인생. 그래서 이 영감탱이 말고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야?' 싶었다.
뭐라고 대꾸할지도 몰랐다.
내나이도 중국 아줌마와 엇비슷한 나이지만, 내 인생은 큰 부침이 없었다. 직장 다니는 아버지와 전업주부 엄마 사이에 자랐다. 젊은 시절, 아버지 술주정과 외도, 돈 문제로 부부싸움은 잦았긴 했다. 하지만 울엄마는 능력이 없어서 이혼을 못한건지, 자식이 눈에 밟혀 이혼을 못한건지는 몰라도, 울며 한탄하며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희한한건 지금은 딩크족처럼 맞벌이하며 외식하고, 여행하며 사이좋게 지내고 계신다.
나는 초, 중, 고, 대학, 잠깐의 어학연수를 거쳐서 취직을 했고, 남편 만나 결혼해서 줄줄이 애 셋을 낳아서 키우고 살림한다. 애들도 제법 커서 다시 직장에 복귀할 생각이다. 내 동생도, 주변 사람들도, 친척들도 큰 부침없이 거의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중국에서 만났던 대학 친구들도, 직장 동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프랑스에 오니 아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자주 접한다.
보통은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는 중퇴, 여기저기 일하다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고, 본국에서 크고작은 죄를 졌거나, 빚을 졌거나 해서 본국에 살 수 없어서 외국에 도망 나온다. 본국에 애도 있고, 빚도 있으니 큰 돈 벌어서 부쳐줘야 한다. 일단은 비자 문제가 급하니 이 남자든, 저 남자든 만나서 임신부터 한다. 또 돈을 벌어서 부쳐줘야 하고, 몸 쓰는 일, 밤에 하는 일을 많이 하고, 몸매가 부각되는 옷을 즐겨 입고, 술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
내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었다!
이 아줌마들하고 나하고 엮이게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그 집 아이들도 똑같이 아시아 엄마와 프랑스 아빠 밑에서 나온 혼혈 아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같이 다니고, 놀이터에서 만나면 같이 논다. 똘레랑스고 뭐시고 간에 인종차별은 본능이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안다. 애들도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끼리 어울리는게 마음 편하다.
나는 이 사연 많은 아줌마가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애들까지 못 놀게 할 수는 없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나. 애들은 멋도 모르고 신나게 뛰어논다. 이 아줌마는 여느때처럼 남자문제, 섹스, 돈 하소연을 줄줄이 털어놓는다. 나는 멍하니 듣고만 있다. 대꾸할 말도 딱히 없다. 중국말이라 애들이 알아듣지 못해 다행이다.
남편이 한국에 있을 때 거듭 말했다. 한국은 "텔레토비 동산"같다고. 내가 하는 걱정도, 불만도, 상처도 너무 사치스럽다고 했다. 유난스럽다고 했다. 프랑스에 몇년 살다보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프랑스에서 날 것 그대로의 사람들, 사연 많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김민희, 홍상수도, 정준영도 프랑스를 택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다처다부, 불륜, 30~40살 나이 차이 커플, 10대 미혼모, 성소수자, 마약, 약탈, 방화 등등 한국에서 뉴스에서 나올만한 일들이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보고 겪는 일이다.
그러면 나는 왜 프랑스에 왔나? 프랑스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프랑스는 단한번도 나보고 오라고 초대한 적이 없다. 지발로 괜히 와서 프랑스 탓하지 말고, 나한테 맞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