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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리 Sep 23. 2024

게이 할배와 페미니스트 할매

프랑스의 주말은 '따분함' 그 자체다. 길거리에 쥐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사람 하나 없고, 차도 안 다닌다. 모든 가게는 문을 닫는다. 몇몇 식당이 열긴 여는데 가격이 워낙 비싸서 갈 엄두도 못낸다. 우리한테는 '그림의 떡'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프랑스에서 자고로 레스토랑이란 경제적 여유 넘치는 싱글 노인들이 데이트하러 가는 그런 럭셔리한 곳이다.


우리처럼 무식하게 애만 줄줄이 낳은 가난한 이민자 가족한테는 주말은 그저 동네 공원행이다. 애들하고 배드민턴 치고, 원반 던지기하고, 자전거 타고, 씽씽카 타고 그렇게 보낸다. 푸르른 숲속 공원에서 평화롭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 풍경 자체가 한국 사람들한테는 '유럽 생활 로망'일테다. 나도 처음에는 좋았다. 그런데 2년이 훨씬 넘도록 똑같은 공원에 가서 노는 것을 수없이 반복하다보니 따분해 죽겠다. 마흔도 안됐는데 세상 다 산 노인처럼 애들 노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갑갑 그 자체다.


그 날도 여느 평범한 일요일 오후였다. 온 가족이 공원에서 한참 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막내는 유모차에 태워 밀고, 둘째는 씽씽카를, 첫째는 자전거를 타고, 남편은 배드민턴채, 원반, 물통, 간식통 따위가 잔뜩 들어있는 천가방을 어깨에 매고 걷는다. 잠시 걷다가 둘째가 다리 아프다고 찡찡댄다. 남편은 묵묵하게 한 손에는 씽씽카를, 한 손에는 둘째를 안고 터덜터덜 걷는다. 온가족 행진하는 모습이 브레덴 음악대가 따로 없다.


그러다 갑자기 바로 앞에 펄럭이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시립미술관에서 유명 화가 4명이 미술 작품 전시회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곳에 살다보니 이런 작은 행사만 있어도 신이 나고 가슴이 쿵쿵 뛴다. 마침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 있는 시립 미술관이고, 게다가 이건 공짜! 안갈 이유가 없다. 첫째도, 둘째도 가보자고 조른다. 뭔지도 모르는 막내도 가자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그 꼬라지로 미술관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막내는 "쉬! 쉬!"하면서 야단이 났다. 직원한테 "봉주르!"를 급히 외친다. 프랑스에서는 "봉주르"라는 말을 안하면 거의 사람 취급을 안해준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먼저 봉주르를 외쳐야 한다. "죄송한데요. 화장실이 있나요? 애가 급해서..."라고 하니, 당연히, 아주 자랑스럽게 "화장실은 없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알려준다. 미안해 하는 기색 하나 없다. 지난 2년동안 프랑스에서 차고 넘치게 겪었으므로 놀랄 일도 아니지만 여전히 적응 안된다. "그러면 이 많은 관객들과 직원은 화장실 안 갑니까? 어른은 참는다 쳐도 애들은 급하니 좀 봐주시면 이번만 안될까요?"라고 묻고 싶지만, 프랑스에서 그런 말은 하면 안된다고 프랑스 친구들이 말해줬다. 프랑스에서는 하면 안되는 질문이 너무 많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일개 못사는 나라에서 온 이민자 주제에 그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냐는 표정으로, 얼굴이 푸르락 내리락 당혹스러워 어쩔줄 몰라한다. 그래서 나는 프랑스에 와서 아주 소극적으로 변했다. 웬만하면 입을 닫고 산다. 하는 없이 나는 막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미술관 건물 구석에서 쉬를 시킨다. 벽에 그려진 모양이 햇빛에 반짝이하나의 예술작품 같기도 하다.


미술관에 들어가서 작품을 감상해 본다. 그런데 그림이 죄다 누드다. 여자 가슴 그림으로 가득 찼고, 여자 성기, 남자 성기 그림도 있다. 두돌된 우리 막내도 그림을 알아보고 손으로 가리킨다. "찌찌!", "찌찌!" 둘째도 "여기도 찌찌, 저기도 찌찌"하면서 설명을 해준다. 나는 누드에 별 감흥이 없어서 미술관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다정하게 손을 잡은 커플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봉주르!"


그런데 이 커플은 한국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커플이 아니다. 게이 할배 커플이다. 60은 훨씬 넘었을 할아버지 두 명인데, 둘다 안경을 썼고, 대머리에, 배가 볼록 나오고, 하체가 아주 빈약한, 그런 전형적인 도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둘이서 우리 집 앞에 있는 크레페식당을 운영한다. 항상 손을 잡고 다니거나 어깨를 감싸고 항상 둘이서만 다닌다. 일도 둘이서 하고, 식당도 둘이서 가고, 미술관 관람도 둘이서 다닌다.


나는 처음에 봤을 때 이 할배들이 게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 그래서 남편한테 별 생각없이 물었다. "왜 저 할배들은 둘이서만 맨날 딱 붙어서 손을 잡고 돌아다녀?" 남편에게 돌아오는 대답. "저 사람들 게이야. 게이인거 몰랐어?" 내가 20대에 우연히 만나본 몇몇 게이는 20대~30대 젊은 남자였고, 탄탄한 몸에, 패션센스가 넘치는 그런 예술가 기질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60이 넘고 후덕한 할배들이 게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해봤다.


하긴 이 할배들도 3, 40년 전에는 나름 핫한 게이 커플이었으리라. 그 때는 젊었고, 몸도 탄탄했고, 패션 센스도 넘쳐흐르는, 반항기 넘치는 멋진 성소수자였으리라. 그런데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모든 것은 빛이 바랜다. 그게 게이였건,  페미니스트였건, 타투였건 간에. 젊은 시절 그토록 중요했던 것들이 노인이 되고나면 그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결국은 다 쭈글쭈글하게 비슷해진다는 것을 프랑스에 와서 많이 보았다. 젊음이라는 것은 영원할 것만 같지만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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