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나는 축지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시간을 단축시켜 순식간에 도착할 수 있다.
중국무협영화에서는 사람들이 날아다녔다. 그건 영화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이 들었다.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축지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먼저 축지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축지법은 도술로 땅을 줄여 먼 거리를 가깝게 하는 술법이라고 나온다. 다시 말해 A에서 B까지 거리가 100이라면, 땅을 주름지게 하여 겹쳐서 50 내지 20으로 만들어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도술이다
'축지법을 쓰는 사람은 느릿느릿 걸어가는데 나는 아무리 달려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더라', 하는 반응도 이 개념에서 온 것이다. 땅을 축소해서 느린 한 걸음으로도 많은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지법을 실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좀 더 찾아보니 지금은 폐업했지만 합정역 1번 출구 앞에 축지법을 배우는 학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럼 누군가가 정말도 축지법을 사용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사기인가? 아무튼 도전해 보기로 했다.
축지법이라는 기술은 사실 국내 전통 기공수련술 중 기천문, 칠성보법의 기술이다. 기천문의 축지법 실제 동작을 보면 땅을 접어 달리는 아주 신비한 초능력이 아니고 일종의 '건강보법'이다. 잔발로 총총총 뛰어 한 도인이 산행을 쉽게 하는 시연을 보인바 있다. 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학원 또한 일종의 기천문 수련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도심의 수련원이나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면 심신과 건강을 단련하는 일종이 건강보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되었던 축지법은 무협영화나 놀림거리, 웃음거리의 소재로 삼아왔으나, 이쪽 분들은 정말 웃음끼 싹 빼고 정말 진지하게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니 왠지 모르게 진지해 보였다.
"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그럼 한번 도전해 볼까?"
참고로 나는 미치지 않았다. 돌아이도 아니다. 나 역시 진지했다. 인간이 부르는 초능력은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교통수단이 발명되기 전에 오직 인간의 두 다리로 모든 것을 견뎌야 했던 시절에는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 우리의 능력은 편리함이라는 도구로 인해 퇴화된 것이라 생각된다.
집 앞 공원에 나갔다. 아직은 어색할 수 있으니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다. 우선 명상에 들어갔다. 무협지에 나오는 것처럼 가부좌를 틀고 단전에 힘을 모아 최대한 내공을 쓸어 담는다고 생각했다. 발상으로 따지면 A에서 B까지 시공의 지름길을 만들어 단시간 내에 이동하는 워프개념과 같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개념은 이해가 된다. 즉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플래시'처럼 광속으로 달리면 길이 수축이라는 현상이 일어나서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런 초능력은 나에게는 없다. 그리고 이것은 엄청 빨리 달리는 신행법이지 축지법은 아니다.
축지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인물들이 방송에 소개된 적은 있다. 대표적으로 '허경영'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이 사람의 특징은 말로만 감질나게 밝혔을 뿐 실제로 시전을 한 적은 없다. 내가 생각한 이론과 가장 근접하게 말한 이는 배우 이상인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 방향으로 100미터가량의 목표점을 두어 '가까워져라' 생각하고 걷다 보면 축지법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실제로 연습하고 가능성을 받아들인 방법이다. 이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축지법을 시전 한다고 했다.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의병장으로 유명한 '신돌석'도 썼다고 하며, 보부상 출신으로 고종의 심복이 되기도 한 독립운동가 '이용익'도 축지법을 썼다고 한다.
고종이 축지법의 비결을 묻자
"두루마리가 걸리적거리지 않게 잡은 다음 좀 빠르게 걷기만 하면 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의 발걸음을 보면 발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축지법을 시전 해보기로 한다. 먼저 100미터 앞의 화장실건물에 목표를 잡는다. 나의 달리기 기록에 의하면 100미터를 18초에 달릴 수 있었다. 물론 살찌기 전에는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지금은 최대한 빨리 달린다고 해도 20초가 나올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빨리 달리면 안 된다. 그것은 축지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대하 체력을 쓰지 않고 순식간에 도착하는 것이 축지법의 목적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대지의 기운을 느낀다. 눈을 감고 잔상에 남아있는 화장실 건물을 그려본다. 생각한다. '가까워져라 가까워져라.' 그리고 눈을 뜬다. 화장실 건물은 눈앞에 와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몸을 넘어질 듯 앞으로 기운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순간 한 다리를 들고 위로 힘차게 점프를 한다. 공중에 내 몸이 뜨게 된다. 내가 맡아보지 못한 공기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체내에 들어온 공기는 흡입-압축-폭발-배기 순으로 나를 앞으로 쭉 밀어낸다. 몸이 땅에 내려갈 때쯤 다른 발을 같은 방법으로 시전 한다. 그러면 나는 순식간에 화장실 건물 앞에 와 있다.
성공이다!
다시 한번 같은 방법으로 시전 해본다. 그리고 시간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축지법을 쓰지 않고 무작정 빨리 달렸을 때의 기록은 24초가 나왔다. 하지만 축지법을 쓰고 시간을 재보니 18초가 나왔다. 성공이다. 무려 5초가 단축되었다. 좀 더 열심히 하면 10초까지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뻤다. 나는 축지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내가 원하는 곳 어디에도,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모든 곳, 꿈같은 세상이 있는 곳, 보고 싶은 이들이 있던 추억 속의 그곳으로 나는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내 상상은 끝없이 펼쳐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고, 미래를 여행하고 있었다고, 무협지에 나오는 영웅처럼 강호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들과 싸우고, 협객이 되어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고, 신선이 되어 영생을 누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끝없이 어디론가 펼쳐지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자랑을 했다. 아내는 나에게 이제까지 가장 빨리 뛰었던 기록이 얼마냐고 물었다.
"고등학생 때인가? 그때 14초 뛰었지"
"그래? 그럼 살 빼고 운동하는 게 더 빠르겠다."
엇! 하고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다. 어쩌면 가장 빠른 축지법은 살 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때 와이프가 박장대소를 하며 손으로 TV를 가리켰다.
"규호 씨! 규호 씨랑 똑같은 사람 나온다."
TV에서는 '나 혼자 산다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주승이라는 배우가 축지법을 시전 하는 영상이 나온다. 그가 축지법을 시전 한다며 깡충깡충 뛰는 모습이 나왔다. 비슷하다. 아니 똑같다. 내가 시전 하는 축지법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심지어 뒤에 따라 하는 연예인들도 똑같이 시전 한다.
나는 알았다.
내가, 내가 저렇게 꼴사나운지....
그날 이후 나는 축지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도 과거의 그들도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