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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Feb 08. 2022

달려라, 누렁이

누렁이 목줄을 잡고 걷노라면 묵직한 야성이 느껴진다.

누렁이가 달릴 때면 줄을 놓칠까 봐 나도 전속력으로 달리게 된다. 

줄을 통해 내 몸에 전해지는 녀석의 거친 야성.

바람에 날리는 금빛 털, 살랑살랑 흔드는 꼬리의 움직임과 힘찬 숨소리를 좋아한다.


내 통제를 벗어나 빽빽한 관목 사이로 코를 박은 채 킁킁대면 

나도 덩달아 땅의 기운을 들이마시는 기분이 된다. 

누렁이와 한 몸이 된 것 마냥 진한 흙냄새가 온몸에 퍼진다.

어떤 순간엔 줄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자신의 속도대로 네 발로 자유롭게 달리게 해주고 싶다.

실제 그랬던 적이 있다.

5년 전이던가?

용산 너럭바위 숲에서 슬그머니 줄을 놓아주었다.

주위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렁이 나이는 인간으로 치면 청년쯤 되었을라나.

세렝게티를 누비는 야생동물처럼

금빛 털을 휘날리며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누렁이의 모습은 눈부셨다.

녀석을 따라 나도 뛰었다. 

아뿔사! 

콩밭에서 김매는 아랫집 할머니가 보였다.

녀석은 할머니에게 돌진했고 할머니는 기겁을 하고 뒤로 넘어지셨다.

다행히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많이 놀라신 듯 했다.

녀석을 집에 묶어 놓고 집에 있는 온갖 효소와 과일과 과자 등을 싸 들고 할머니 댁으로 갔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고 할머니는 연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당시 상황을 되풀이해서 설명하셨다. 

난 할머니 손발을 주무르며 놀란 가슴을 달래드리려고 애를 썼다.

머리를 조아리며 할머니께 거듭 사과드렸다. 

 '천사견이라 불릴 만큼 순한 녀석이에요. 손을 입안에 넣어도 절대 안 물어요.'

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그건 개주인의 항변일 뿐. 

목줄 풀린 대형견은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개를 풀어놓고 키우려면 울타리로 둘러싸인 넒은 마당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누렁이를 데리고 산책할 때마다 목줄을 놓아주고 싶은 충동이 여전히 꿈틀댄다.

물론 5년 전 사건 이후로 줄을 놓칠까 봐 조심 또 조심하지만 말이다.

녀석의 속도에 맞춰 내 달리기 실력을 키우는 편이 낫겠다 싶다.

누렁이도 노년에 접어드니 힘이 좀 달리는지 뛰는 속도가 예전 같지 않다.

서로의 속도가 비슷해졌다.

그래, 우리 함께 달리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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