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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bbit Apr 29. 2021

대충의 미학

행복한 삶을 위한 태도 1

나는 동서양 어느 문화의 잣대를 적용하더라도 절대적으로 자상한 남편과 산다. 게다가 집안일은 그 집안에 사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나누어해야 하는 일이라는 현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덕분에 시간이 되면 본인이 빨래를 하려고 한다. 

Photo by Karolina Grabowska from Pexels

하지만 나는 그가 빨래하는 것이 싫다.


그는 바지 주머니를 확인하고 세탁기를 돌리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를 두고 손세탁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기에 손세탁해야 할 스웨터를 따로 빼놓지 않는다. 빨래를 털어서 널어야 한다고 15년째 얘기하고 있지만 결코 빨래를 털어서 널지 않는다. 양말을 펴서 널지도 않고, 제습기 방향과 거리를 고려해서 통풍이 될 수 있도록 빨래를 배치해서 널지도 않는다. 쪼글쪼글해진 티셔츠의 긴 팔 부분을 손으로 펼 때나 건조한 계절에 장마철 덜 말린 냄새나는 수건을 삶아 빨아야 할 때마다, '이렇게 대충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가끔은 말로 뾰족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남편은 개의치 않는다. 자기는 자기가 빨래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구깃구깃한 것은 펴서 입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남편은 숲을 보는 사람이다.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고,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80대 20, 파레토의 법칙을 업무뿐 아니라 매사에 적용한다. 20%의 노력으로 80%의 결과물을 내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은근히 완벽주의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나에게 20분 만에 뚝딱 차려낸 남편의 저녁 식사에 들어간 야채는 너무 크고 일정하지 않게 썰어져 있다. 파스타와 샐러드만 있는 메뉴도 뭔가 정성이 부족한 듯하다. 하지만 솔직히 맛이 나쁘지는 않다. 자신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는 뿌듯함에 행복한 얼굴로 밥을 먹는 남편의 모습에 그동안 궁금해했던 수수께끼의 답이 얼핏 보이는 듯하다.


나의 남편은 짜증을 내는 일이 거의 없다. 지치지도 않고 매사에 긍정적이며 그 기운을 실은 기분 좋은 말들로 상대방의 심기를 편하게 한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아마도 그 비결은 '대충의 수용'이 아니었을까?

Photo by Karolina Grabowska from Pexels

완벽을 추구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스스로를 지치게 하는 것보다는, 대충이라도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오히려 '대충'을 추구함으로써 더 많은 성취감을 이루어 내는 것이 비결일 수도 있다. 적당한 깊이의 잡학 다식한 사람들이 더 다양한 분야에서 만족감을 도출해낼 수 있기에 그들의 삶이 역동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20%의 노력으로 80%의 결과를 도출해내고, 남아있는 노력들로 다른 일들을 더 많이 이루어 낼 수 있고, 거기서 오는 성취감으로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만족감과 행복감이 상승하는 효과가 아닐까?


거기에 반해, 나름 시간과 공을 들어 진을 빼며 진공청소기를 밀고 난 이후에 보이는 머리카락 한 올에 짜증이 나고, 남들이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들여도 더 나은 성과가 안 나오는 것 같아 조바심내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은 아직 '대충의 미학'을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해서가 아닐까? 80% 완성된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머지를 채워 완벽을 추구하겠다고 4배의 노력을 더 쏟아부으며 상실하게 되는 기회의 비용은 행복지수에서 깎여나가는 것이리라.


나의 행복지수를 지키기 위해 완벽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나의 모습에 관대해져야겠다. 대충에 만족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청소를 마치고 난 이후에는 바닥을 보지 말고 수고한 나에게 주는 커피 향을 음미하는 데 집중해야겠다. 그가 터득한 대충의 미학을 배워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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