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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nstaste Aug 20. 2019

언제나 여유로운 포틀랜드 현지인들의 휴식처 3

잃어버린 취향을 찾아서


막 포틀랜드에 도착해 횡단보도를 건너려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격이 급한 탓에 얼른 건너고 싶어 고개를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니, 이를 본 어떤 아저씨께서 "포틀랜드에서는 여유를 가져야 돼" 한 마디 건네왔다.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던지라 당황스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맞는 말이다. 굳이 빨리 갈 필요가 없다. 포틀랜드에서 대부분 운전자들은 신호가 바뀌어도 보행자가 건너길 기다려주는 여유로운 곳이니까.


이 때부터 였을까. 여행을 하면서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다음은 어디를 가야할 지 굳이 얽매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서야 포틀랜드 사람들의 특유의 느긋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꺼이 게으른 여행자가 되어 포착한 현지인들의 여유가 가득 담긴 포틀랜드의 휴식처 3곳을 소개해보겠다.


① 윌래밋 강 Willamette River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된 상태라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일출을 보러 가기로 했다. 잠은 아침 먹고 다시 자야지 다짐하며 숙소를 나섰다. 거리는 아직 어두웠다. 거리에는 청소하는 미화원들 아니면, 외투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노숙자뿐이었다. 발걸음을 떼기 겁이 나 다시 숙소로 돌아갈까 했지만, 왠지 돌아온 길에 노숙자가 더 많아 보여 계속 가보기로 했다.



저 멀리 다리 위로 해가 떠오른다. 강물에 비치는 붉은 빛이 강렬한 에너지로 변환되어 내게 흡수될 것만 같다. 포틀랜드는 월래밋 강을 따라 다리가 12개가 있어서 브릿지 타운(Bridge Town)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새터데이 마켓이 열리는 번 사이드 브릿지(Burnside Bridge), 다운타운과 강 건너 센트럴이스트를 연결해 자전거 통행량이 가장 많은 호손 브릿지(Hawthorne Bridge), 윌래밋 강 동쪽에 높게 세워진 철골 구조물이 인상적인 스틸 브릿지(Steel Bridge) 등이 잘 알려져 있다.



호손 브릿지쯤부터 걷기 시작해 스틸 브릿지가 보이는 곳까지 걸었다. 한 20분 정도 걸으니 날이 점점 밝아오면서 윌래밋 강으로 조깅을 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보였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아침을 누군가는 운동으로 시작한다라.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도 따라서 아침 운동을 해볼까 했지만, 저기 산책 나온 새들도 안다. 아마 시도도 안 할 거라는 걸.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 강에서 카누를 타는 기분은 어떤 느낌일까. 새해에 일출을 보러 간 동해안에서 그 추운 겨울에 누가 서핑을 하던데.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희열이 있나 보다. 언젠가 안전하게 오리배 정도로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은 든다. 

여행지에서 보는 일출은 언제나 좋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곳의 시작을 함께하며 조금 더 친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친구와 둘이서 남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을 공유하던 때처럼.


② 피톡 맨션 Pittock Mandsion


피톡 맨션은 포틀랜드에서 가장 전망 좋은 집이라 불린다. 너무 거창한 수식어가 아닐까 염려가 되었지만, 직접 가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대중교통으로 20분 정도 가면 입구에 도착한다. 주변엔 재패니즈 가든과 로즈가든이 있어서 함께 둘러보기 좋다.



피톡 맨션을 가기 위해 자동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구불구불한 산길을 15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그래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맑은 공기 덕분에 힐링하는 기분이 든다. 걷기 좋은 코스다 보니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현지인들이 많이 보인다. 미국은 집들이 큼직큼직해서인지 개들도 일어나면 사람 키만 한 대형견들이 많다. 



중간 중간 피톡 맨션과 관련된 팻말이 보였다. 약간 TMI인 부분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걷다 보니 금방 도착했다. 아직 내부 관람을 할 수 없는 이른 오전 시간인데도 주차장에 차량이 꽤 많았다. 내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구경할 수 있다.



피톡 맨션은 아까 팻말에서 본대로 Henry Pittock이 지었다. 57,000평이 넘는 부지에 46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거대한 저택이다. 이 높은 곳까지 이 정도 크기로 지으려면, 막대한 노동력이 투입됐을 거라 예상된다. 일상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큰 집이 필요할까 싶긴 하다. 그래도 지금은 매년 8만 명이 꾸준히 피톡 맨션을 보러 방문할 정도로 포틀랜드 관광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지금의 관광지로 거듭나기까지 일화가 하나 있다. 1958년 후손들은 피톡 맨션을 팔기 위해 시장에 내놓았다. 하지만 이 저택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1962년에 태풍으로 인해 집이 크게 파손되었는데, 수리할 능력이 안되는 집주인은 이 집을 철거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접한 포틀랜드 주민들은 철거를 반대해 돈을 모아 이 집을 사기로 했고 225,000달러를 모금해 집을 산 뒤로, 1965년부터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있다고 한다.



집 안쪽으로 들어서니 윌래밋 강이 흐르고, 마운틴 후드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내려다보인다. 만약 그대로 철거해버렸다면, 아쉬움이 크게 남을 만한 전경이다. 날이 흐려 마운틴 후드는 잘 안 보였지만, 이 정도 경치라면 포틀랜드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집이라는 말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③ 오리건 동물원 Oregon Zoo


오리건 동물원은 지하철로 15분 정도 가면 도착한다. 중심가 주변에서 가까워서 접근성이 편리하다. 아무래도 동물원이라 어린아이들과 놀러 온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이 보인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신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덩달아 내 기분도 들뜨게 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7.95달러다. 자세한 가격은 아래를 참고하시길. 대중교통 이용권을 보여주면 1.5달러를 할인해준다.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뜻밖의 공짜 돈이 생긴 느낌이라 기분이 좋아진다. 주차비는 한시간 당 2달러이고, 하루 최대 8달러까지 책정한다.


<오리건 동물원 입장료>

Adult (12–64): $17.95

Senior/military (65 and up): $15.95

Youth (3–11): $12.95

2 and under: Free

https://www.oregonzoo.org/



보통 하절기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엔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다행히 며칠 전에 하절기 운영 시간으로 바뀌어서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1888년 이후 개방된 오리건 동물원은 매년 15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포틀랜드 사람들이 즐겨찾는 휴식처다. 오리건 동물원은 Great Northwest, Fragile Forests, Asia, Pacific Shores and Africa. 이렇게 5개의 큰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안에는 23개의 세분화된 전시장으로 구분된다.



오리건 동물원은 포유 동물, 파충류, 양서류, 새, 물고기 등 215종에 속하는 2,585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15종의 동물들도 함께 살고 있는데, 멸종 위기 위험이 있는 총 62종의 동물들과 함께 서바이벌 플랜에 따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지도를 펼쳐보니 꽤 넓다. 가까이에 펭귄이 있어서 가장 먼저 보러 갔다. 펭귄들이 줄을 지어 나오는데, 생각보다 작고 앙증맞다. 펭귄의 먹이 때문인지 악취가 심해 오래 있지는 못하겠단 생각이 스치던 찰나, 펭귄을 구경하러 온 꼬마 친구들이 코끼리 공연이 있다고 얼른 가자며 엄마의 옷깃을 잡아 이끈다. 오리건 동물원은 정해진 시간마다 특별 공연을 하는데, 마침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공연을 놓칠세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코끼리가 사육사의 구령에 맞춰 앞다리를 올리고, 한 바퀴 돌면서 재롱(?)을 부린다. 거대한 몸집임에도 나름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데 정말 귀엽다.



이번엔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포식 동물 구역으로 갔다. 여기가 하이라이트인지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아쉽게도 사자는 자고 있었다. 나를 위협하는 건 무섭겠지만, 너무 편안하게 휴식만 취하고 있으니 아쉽다. 그래도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야...



먹이를 열심히 먹고 있는 기린들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동물원을 잘 안 가는 편이라 오랜만에 보는 동물들의 사소한 광경마저 신기하다. 



맨날 인형으로만 보던 홍학을 발견했다. 분홍빛 다리가 정말 길었는데 동화책에 나올 거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마 동물원을 방문한 여느 아이들보다 감탄사를 자주 연발했을 거다.  오리건 동물원을 둘러보며 느낀 건, 동물들이 원래 생활하던 야생처럼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일단 부지가 널찍해서 보기에 최소한 갑갑하지는 않았다. 물론 야생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동물들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건, 이상적인 동물원의 역할을 수행해가고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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