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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Oct 31. 2023

온 동네에 진동하는 거름 냄새를 누린내로 희석시키다

소설 재롱이 - 울타리

3.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신앙 또한 없다. 그런데도 활짝 웃으며 교회에서 나왔다. 내 손에는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초코파이가 들려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걸었다. 그러자 사방에서 똥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동네 할머니들이 봄만 되면 뿌려대는 거름과 비료 때문이다.


“야, 내놔”


그때 누군가가 초코파이를 뺏어갔다. 내 뒤를 따라 교회에서 나온 동네 형들이다.


“내꺼야!”


반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신앙도 없이 지루한 목사님의 말씀을 왜 들었겠는가? 오로지 이 초코파이 때문이다. 그런 내 노동의 가치를 강탈하려 하는 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강자다.


퍽 주륵


주먹이 지나가고 쌍코피가 터졌다. 그들은 나를 보며 낄낄거린다. 서서히 불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코를 찌르는 거름 냄새가 더욱 심해진다. 뒤를 돌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낄낄”


그들은 볼썽사납게 도망치는 내 뒤를 쫓기 시작했다. 마치 메뚜기를 밟아 죽이듯이, 야구공 대신 두꺼비를 던지듯이. 나무에 돌을 던져 매미의 체액을 비산시키 듯이.


그들은 악을 행하는 게 아니다. 그저 유희를 즐길 뿐이다. 선과 악의 기준이 없는 순수한 손길로, 도덕의 잣대와 판사의 망치가 닿지 않는 곳에서, 적자생존 약육강식이라는 순수 자연 그 법칙을 그대로 따를 뿐이다.


나는 나만의 울타리를 향해 달렸다. 내 가족이 있는 곳으로, 거대한 태풍조차 막을 수 있는 문으로. 거름 냄새를 막아 줄 수 있는 집으로.


철푸덕


허나, 나를 앞지른 순수한 영혼이 내 발을 걸었다. 약자의 몸뚱이는 관성의 법칙에 따라 바닥에 곤두박질칠 뿐이다. 집까지는 거리가 더 남았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는 낄낄거린다.


고작 이 여린 몸뚱이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밖에 없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티셔츠의 카라를 적시고 있다. 가해자가 만든 울타리에 갇혔다. 내게 권선징악을 보여줄 동화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컹컹”


그때 네발 달린 짐승이 크게 짖으며 뛰어왔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나를 둘러싼 울타리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으악!”


쉽게 허물어지는 울타리. 허벅지를 깊게 물려 피를 질질거리며 도망가는 동네 형들. 재롱이는 그들을 끝까지 물며 놓아주지 않았다.


할짝


그리고 개선문을 통과하는 장군처럼 내게 다가왔다. 얼굴에 범벅이 된 눈물과 코피를 정성스레 핥아준다. 그 작았던 존재가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어느새 나보다 덩치가 더 커졌다.


재롱이를 껴안았다. 얼룩덜룩한 털에서 누린내가 올라온다. 개 털이 내 전신에도 달라붙기 시작한다. 우리는 같은 향기로 동화되어 갔다. 더 이상 동네에 진동하는 거름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면 개털을 묻히고 왔다며 할머니께 혼날게 확실하다. 허나,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 없다. 나는 이 고소한 누린내로 온 동네에 진동하는 거름 냄새를 희석시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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