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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Nov 04. 2024

그래 나도 네가 좋다

소설 재롱이-있는 그대로

4.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EF 소나타 한 대가 학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경남 하동군이지만, 차량 번호판에는 ‘부산’이라는 지역명이 적혀있다. 우리 가족은 최근에 IMF가 터지면서 하동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항상 부산에서 살았다.


저벅저벅


운동장을 걸어갔다. 신발에 딸려온 흙 알갱이가 튀며 발목을 툭툭 건드린다. 곧 학교 건물에 도착하여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의 중간 벽면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있다. 130cm 짜리 아이의 전신을 다 비추기에 충분한 크기다.


거울을 잠시 흘깃거렸다. 정갈하게 나누어진 2대8 가르마. 헤어무스로 인해 딱딱해진 머리카락. 청바지에 청자켓. 어머니의 손길이 한껏 느껴지는 스타일링이다.


다시 계단을 올랐다. 2층에 도착하니 복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서로 싸우고 있는 아이. 쫓고 쫓기고 있는 아이. 신발장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아이. 창문 밖을 향해 손을 뻗어 분필 지우개를 털고 있는 아이.


웅성웅성


그중 몇몇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 친구들과 소곤거리기 시작한다. 워낙 시끄러웠기에 그들의 숨결이 내 귀에 닿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복도를 걸을 뿐이다. 곧 교실 앞에 도착했다.


2학년 교실이다. 전교생 60명가량의 초등학교다 보니 학년마다 1반 밖에 없다. 당연히 반을 구분하는 표시도 없다. 오로지 학년만 구분할 뿐이다.


드륵


교실의 낡은 미닫이 문이 열렸다. 반 친구들의 모습이 내 망막에 맺히기 시작했다. 가슴골이 보일 정도로 늘어난 난닝구만 입고 있는 아이. 흙과 검댕으로 얼룩진 흰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이. 머리에 새집이 지어진 아이. 하얗게 눈이 쌓인 콧물 자국을 자랑하는 아이. 입가에 마른 버짐이 퍼진 아이.


키득키득


그들의 눈에도 내가 들어왔을까? 그들은 나를 보며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쟤 머리 이상해!”


처음 보는 ‘다름’에 유희를 느꼈기 때문일까? 그들은 나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헤어 무스로 인해 광이 나는 내 머리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딱딱한 머리카락을 신기한 듯 만져본다.


“에~에~에! 에~에~에! 머~리가 딱딱하데요~ 딱딱하데요~”


짓궂은 몇몇 아이가 내 머리를 때리고 도망친다.


벅벅


도망치듯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머리를 박박 문질렀다. 어머니의 정성이 무너진다. 내가 흐릿해진다. 머리에 새집이 지어졌다. 정갈한 머리는 이제 없다. 나도 이제 그들과 비슷한 모습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그들은 아직도 나를 보며 키득거린다. 머리에 새집이 지어졌다고 하지만 광이 나는 머리는 그대로다.


------


딩동댕동


하교 종이 울리자마자 도망치듯 학교를 나왔다. 내 옆에는 하굣길을 따라 흘러가는 섬진강밖에 없다. 섬진강물은 햇빛을 한 것 머금어 광을 토해내고 있었다. 청둥오리는 강물을 따라 유유히 떠내려가고 있다.


“왈왈!”


멀리서부터 냄새를 맡았기 때문일까? 집 근처에 도착하자 네발 달린 짐승이 달려왔다. 내 친구이자 가족인 재롱이다. 쪼그려 앉아 재롱이를 껴안았다. 고소한 누린내가 코를 자극한다. 재롱이도 내 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할짝


잠시 내 냄새를 음미하던 재롱이가 머리를 핥기 시작했다. 마치 소가 머리를 핥는 느낌이 든다. 곧 머리가 축축해졌다. 머리를 핥지 못하게 재롱이를 말렸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내 머리를 핥았다.


왠지 오늘은 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꼬리를 살랑거리는 재롱이를 뒤로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가방과 자켓을 벗어던졌다.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머리를 박는다. 왼손으로 샤워기 호스를 잡는다.


물을 틀기 전, 샤워기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만졌다. 축축하고 끈적한 촉감이 느껴진다. 인상이 찡그려진다. 샤워기 호스를 세면대에 던지듯 놓았다. 고개를 들었다. 세면대 거울에 그려진 내 머리가 보인다.


새집이 사라지고 머리가 정갈해져 있었다. 헤어무스 대신 재롱이의 침이 도포되어 있다. 머리카락은 형광등을 반사시키며 찬란하게 광을 내고 있었다. 다시 내가 또렷해졌다.


“왈왈!”


재롱이가 마당에서 짖고 있다.


'너는 이런 내 모습이 좋은 것이냐? 있는 그대로의 내가 좋은 것이냐? 그냥 나란 사람이 좋은 것이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나갔다. 꼬리를 살랑대고 있는 재롱이가 보인다. 한껏 웃으며 달려갔다.


“그래. 나도 네가 좋다.”


우리는 같이 뛰었다. 머리카락을 따라 땀이 떨어진다. 햇빛을 반사시키는 땀이 머리를 더 눈부시게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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