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집안일:분리수거하는 날

by 성준

우리 동네의 분리수거날은 매주 목요일.

아이를 등원시키는 8시가 되기도 전에 아파트 단지 안에는 큰 바스켓 같은 것들이 세팅되어 있다. 새벽같이 준비를 하시는 것인지, 한 밤중에 놓으시는 것인지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매주 목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준비되어 있다. 몇 년을 어김없이 준비되어 있는 바스켓을 볼 때면 우리 집 아침 밥상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매일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캐치하는 몇 되지 않는 행사 하나가 분리수거날이다. 아침에 이토록 정갈하게 놓인 바스켓을 보면 벌써 이번 주도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가올 주말이 기대가 되기도 하면서 또 아이들의 삼시 세 끼를 찍을 생각을 하면 마냥 달갑지만도 않다.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야 할까 고민을 하기도 한다.


분리수거는 크게 몇 가지의 규칙이 있다. 가정에 나오는 쓰레기들 중에서 재활용이 되는 품목은 몇 개 되지 않는다. 테이프와 송장을 잘 제거한 박스류의 종이들, 장을 한 번 보거나, 배달 음식을 시킬 때면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들 그 외에 유리병과 캔 류 등을 적금 붓듯 모았다가 한 번에 쏟아내는 날이다.


종이류를 정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택배가 오는 것들 중에 부피가 있고 튼실한 녀석을 골라 두어 큰 박스를 만들고 작은 박스들은 테이프를 제거하고 모양대로 접아 박스 안에 포개어 둔다. 박스가 모여진 양을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 집이 이번 주 택배를 얼마 시켰는지 대략 짐작이 되곤 한다. 편하기도 하면서 생각 외로 많이 보인 종이 상자를 보면 약간의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빠짐없이 분리수거를 통해 잘 재활용되기를 바라며 조금의 위안을 삼고는 한다.


유리병과 캔은 생각만큼 많이 나오지 않는다. 주로 발생하는 소스류들은 소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에 드문 드문 자리를 채우고 이제는 생각만큼 캔으로 된 음료를 마시지 않기에 몇 주에 걸쳐 모아두곤 한다. 문제는 플라스틱이다. 배달 음식 한 번에 플라스틱 바구니는 눈에 띄는 부피로 쌓여간다. 매주 분리수거를 하는데도 플라스틱 바구니가 제일 먼저 차버리고, 때로는 한 번에 들고나갈 양을 넘어서 처치 곤란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면 편리함은 대가를 따른다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안 그래도 지구가 미세 플라스틱으로 망가지고 있다는 다큐를 보고는 많이 놀라기도 하고, 뜨끔하기도 했는데도 그 편리함을 저버리기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도 한국의 분리수거는 꽤나 체계적이며, 그 비율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한국 사람들은 분리수거라는 습관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분리수거는 참 현명하고 똑똑한 일이다. 한 번 사용한 물건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일이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환경적으로도 긍정적인 제도가 분명하다.


때로는 내 삶에도 분리수거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내가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고, 낭비했던 나의 생활 속에 다시 활용하고 다른 일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분리수거란 단순히 생활 속에 발생하는 쓰레기에서만 가능한 일일까 의심된다.


의심을 하지만 답을 찾지 못했고, 결국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분리수거가 먼저 되어야 할 목록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몇 개의 단어들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내가 선택한 단어는 감정


나는 감정을 분리수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동안 건강하지 못한 감정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었고, 때로는 감정이 신체 상태를 망가뜨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기에 어쩌면 나에게 절실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감정을 분리수거하기 위해 몇 가지 단계를 만들기로 했다.


첫 번째. 가지고 있어도 좋을지, 버려야 할지를 결정하자.

무언가를 버리기 위해서, 그것들의 현재 가치를 판단해야 했다. 아무리 비싸고 희귀한 물건이라도 나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들은 짐이 되어줄 뿐이다. 더 이상 나의 삶에 의미가 없는 물건이라면,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내가 떨쳐내야 할 감정들과, 지니고 있어야 할 감정들이 어떤 것인지 분류해 보기로 했다.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감정들은, 낮아진 자존감이었다. 나의 가치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다 보니 무엇 하나를 해도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그게 되겠니? 할 수 있겠어? 그래봐야 헛수고야."

"나만 잘하면 돼. 이 집에서 문제는 너야"


이것들이 내가 버려야 할 제일 먼저의 것들이라고 체크를 했다. 내가 지니고 있을수록 마음속의 공간만 차지하고,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는 것들.


두 번째.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버릴 수 없으니 소모하자

때로는 마음속에 꾸욱꾸욱 눌러 두었던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 나온다. 그럴 때면 미친놈처럼 소리치고, 혼자 어쩔 줄 몰라 손을 바들바들 떤다. 목소리를 갈라지고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논리적인 판단도, 상대방의 이야기도 어렵다. 가득 차버린 댐에 수문을 한 번에 개방해 버리면 댐 아래는 홍수가 나버린다.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감정은 쏟아내는 사람도, 마주하는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한 번에 버릴 수 없는 감정이라면, 적당히 소모해 버리자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나는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에 그저 내가 견디거나 넘기는 일이 많았고, 차곡차곡 댐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곁에 둔 사람들은 평소에 멀쩡하던 사람이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억지와 고집을 부리는 탓에 어려움을 겪었으리라 생각한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를 적절히 내보내기로 했다. 서운함을 표현하고, 나의 감정이 넘치기 전에 흘려버리자 결심했다. 아직도 잘 되고 있지는 않다. 타인에게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이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 같아 여전히 끙끙 앓고 있지만, 예전보다는 건강한 방식으로 서운함을 표현한다.


세 번째.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좀 더 믿어 보자

지금까지의 문제를 내가 잘못해서, 내가 잘하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이라 믿었고, 내가 똑바로 서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타인에게 도움을 요구하지 않았고, 도움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만 있었다. 나에게 있는 문제는 나 혼자 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수 도 있는 것이다. 아니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수월하게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데, 나는 알량한 자존심에 타인의 손길에서 부드럽게 눈을 돌리고만 있었다. 주변의 도움에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기록했다. 타인의 말고, 조언이 방황하는 나의 시선을 좀 더 고정시켜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을 분리수거한 다는 것은 내 감정을 효과적을 관리하고 조절한 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고도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신체적인 능력은 그 중요도가 낮아졌다. 도구와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더 이상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아도 그 몇 배의 효율성을 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지금의 인류는 육체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을 더 많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소모가 많아지기에 그 중요성이 더 커진 셈이다.


가지런히 분류된 재활용품을 보고 있으면, 별거 아닌 데 기분이 좋아진다. 분류되고, 나눠지고, 다시 쓸모가 있어지는 모양새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어릴 적 나는 참 단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어려움도 쉽게 극복하고, 장애물을 마주해도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단단한 감정으로 제대로 우뚝 선 사람이 되고자 했다.


글을 쓰고, 채워 나가는 일이 그동안 느낀 공허함을 메꾸기 위함인 듯싶다.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에 부족하고 결핍되었던 공간을 채우기 위해 글을 써 나가고 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모자라고 결핍되어 있지만, 빈 여백에 글이차고, 빈 공간이 생각으로 메워지듯 나의 결핍과 공허함이 메워지리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잘 분리되어 재활용되는 나의 감정을 보며, 뿌듯해하고 기분 좋아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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