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이기에 시어머니가 없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냉장고 사이에 어떤 암묵적인 룰과 신경전이 벌어지는지 주부들의 글과 이야기에 이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부한다. 냉장고는 참 관계적인 존재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가장 축복받은 일 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웬만하면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둘일 때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셋이 되면서 먹는 일에 대해 경쟁심과 위기감이 생긴 것 같다. 이제는 음식이 모자랄 수 도 있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맛있는 간식이 언제나처럼 남아 있지 않기에 아이들은 음식이 보이는 족족 해치워 버린다. 그런 습관이 들어서일까? 어디 가나 음식을 남기지 않고, 어떤 음식도 가리지 않는다. 6살 막내는 김치도 먹을 줄 알고, 야채, 나물, 버섯등 모든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과일과 간식도 언제나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자신의 몫을 확보하려 달려든다. 우리 아이들은 개불, 멍게, 산낙지도 즐긴다. 6살 꼬맹이마저도.
이런 아이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먼저 채워놔야 할 것이 바로 냉장고다. 우리 냉장고에는 항상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한 고기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냉장뿐만 아니라 급할 때 필요한 냉동식품도 가득이다. 종류별로 있다. 여기에 시골에서 반찬이라도 한 번 올라오는 날에는 냉장칸이며, 냉동칸이며 이렇게 넣어도 냉동실이 작동할까 싶을 정도로 차곡차곡 꽉꽉 채워 넣는다. 그렇게 채워놔도 한 주가 지나면, 절반의 공간이 생기는 것을 보면, 참 부지런히도 먹고, 비워내는 것 같다. 계란 한 판도 채 열흘이 되기도 전에 비워진다. 우유나, 요거트를 사두어도, 며칠 버티질 못한다. 유통기한 지난 것을 발견하는 것이 꽤나 힘든 집이다. 이렇게 음식의 순환이 빠른 편임에도 불구하고, 때로 냉장고는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때때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음식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언제 넣었는지 기억이 가물 거릴 정도의 음식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냉동실에서 벌어진다. 어느 정도 시기가 되었다 싶을 때, 냉동실을 한 번씩 뒤엎곤 한다. 물론 그 시기가 매우 정기적이거나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주로 냉동실이 너무 꽉 차있어 재조립 수준으로 물건을 재배치해야 하거나, 냉동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하나하나 음식들을 꺼내다 보면 이건 도대체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음식들이 나오곤 한다. 때로는 명절음식이 분명한 전이 나오기도 하고, 떡국을 해 먹으라 썰어주신 떡이 나오기도 하고, 먹다 지쳐 두어 줄 남긴 삼겹살이 구석에서 나오기도 한다. 한 번은 서랍이 잘 닫히지 않아, 서랍을 꺼내었더니, 서랍 뒤칸으로 넘어간 주꾸미 볶음 키트가 발견되기도 했다. 분명 잘 꺼내어 먹고, 빨리 소진하는 편인데도 꼭 이런 경우가 생긴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항상 빼어먹은 부분만 빼어 먹고, 공간이 생기면 그만큼 채워 넣다 보니 구석구석 위치한 음식들이 냉대받고 있었던 듯싶다. 정말 말 그대로 냉기를 가득 받은 음식들은 이게 더 이상 음식들인지 정체가 불분명해져 결국 음식물 쓰레기로 직행시키기도 한다. 아깝긴 하다만 몇 개월이 넘게 냉동되어 버린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이자하니 그것이 더 몹쓸 짓인 것도 같았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보통 내가 하는 편인데. 어쩌다 아내의 손을 타는 때가 있다. 빈 공간을 계산하지 않고 주문해 버린 음식의 양이 너무 많아, 냉동실의 칸을 비워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때면 아내는 냉동칸 앞에 앉아 모든 음식을 꺼내어 가며, 분류를 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음식물을 정리하고, 새로운 음식물을 넣어놓는다. 중간중간에 음식물에 대한 코치나 보관법의 팁은 전수해 주곤 한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광경이 묘하게 불편할 때가 있다. 아내는 나를 도와주려 음식물을 정리하고, 때때로 팁을 전달해 주지만, 듣고 있는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이 공손하게 모이고, 음식물 쓰레기로 들어가는 음식들을 볼 때면 왠지 모르게 타박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내의 음식물 보관이나 정리 팁은 더 이상 팁이 아닌 잔소리가 되어버린다. 마치. 며느리의 냉장고를 정리해 주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하달까? 멀리서 보면 자녀들의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그 안의 모든 사람은 묘하게 불편함을 느낀다. 정리를 해주시는 시어머니는 이렇게 살림을 하는 며느리가 내심 못마땅하게 느껴지실 수 있기도 하고, 며느리는 정리해 주시는 시어머너의 손길이 고마움보다 불편함과 내 살림을 평가하시는 듯한 기분에 내심 맘이 편치 않을 수 있다. 물론 나의 어머니는 더 이상 냉장고에 손을 대지 않으신다. 아들이 살림을 어느 정도 맡아하는 걸 아신 후부터 냉장고에 손을 대지 않으신다. 냉장고를 정리하시며 아들을 타박하시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지셨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에게 냉장고를 대하는 아내의 손길이 시어머니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음식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어쩌면 집안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지표가 되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음식 없이 정리가 잘 된 냉장고는 집안이 무리 없이 돌아가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식사량을 정확히 예측하고, 필요한 만큼 구입하며, 낭비되지 않고 소비하는 모습 그 자체가 집안 살림의 지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냉동실에 짱 박혀 굳어버린 음식들은 어쩌면 살림 담당자의 게으름과 직무유기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증거가 되는 것일 수 있다. 말 그대로 냉장고를 뒤엎는 행위 자체가 집안 살림살이의 감사와 같은 이벤트일런지도 모른다.
그런 방식으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살림을 평가해 오셨고,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감사 시즌이 오기 전에 부지런이 냉장고를 비우거나, 정리해 이벤트를 대비하기도 했다. 내가 냉동실을 뒤엎는 아내의 손길이 불편하게 느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름 잘하고 싶었는데, 내 손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손길로 정리가 될 때면 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근본을 알 수 없는 죄책감이 솟아오른다. 나는 분명 잘해왔고, 대부분의 냉장고 관리에 최선을 다했다. 아내의 손길은 내가 닿지 않았던 아주 일부분의 것들을 정리할 뿐인데, 그 순간의 나는 냉장고를 방치해 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지 못한다. 아마도 시어머니의 손길을 바라보고 있는 며느리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이런 헤프닝만 제외한다면 냉장고는 내게도 우리 가족에게도 꽤나 안심스러운 존재다. 말 그대로 일용할 양식을 고이 모셔주고, 베풀어 주는 존재. 우리 가정의 경제 상황이나, 살림 살이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간접적인 지표가 되는 존재. 이사를 할 때도 가장 나중에 옮기고 가장 먼저 자리를 잡는 존재가 바로 냉장고다. 이런 정도의 무게감을 지닌 존재이기에 때로 감수해야 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는 셈 쳐야 겠다. 시어머니와 아내 모두 나쁜 의도로 냉장고를 정리하시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오늘 냉장고에서 얻은 교훈
냉동고가 새로 나왔다는데... 냉동고를 새로 장만하면 우리집 냉장고 정리가 좀 더 깔끔하게 이루어질 것 같은 느낌은 단지 나의 착각일까?